14살에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 온갖 학대를 당했던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8일 세상을 떠나셨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ek)’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했던 할머니는 일본의 잔학상을 알리기 위해 마지막 생을 불태우셨다. 그분이 죽음에 이르러 임종시에 하셨던 말씀도 ‘분노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이 한국 민족뿐 아니라 아시아의 약소국가에 했던 경제적 수탈과 인권 착취 그리고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분노할 일이다.

왜 일본은 이렇게 우리에 대해 적대적인 것일까? 일본의 우리 민족에 대한 식민지배는 세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경우였다. 19세기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열강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대로 진출하여 식민지를 만들었을 때 일본의 조선 지배와 같은 경우는 일체 없었다. 보통 식민지배는 해당 국가의 외교권과 군대 통수권을 빼앗고, 행정권은 그대로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식민지배의 목적 자체가 경제적 수탈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행정권까지 빼앗을 이유가 없었다. 식민지배의 이론적 근거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君主論)’인데, 군주론에도 식민지 국가의 행정권을 빼앗지 말라고 했다. 일본 역시도 대만을 식민지배 하면서 외교권과 군사권을 빼앗고 행정권은 대만인들에게 허용해주었다. 그래서 대만에는 일본의 총독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반도의 식민지배는 철저하게 모든 것을 빼앗았다. 1905년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 군대를 해산시키고, 마침내 1910년에 행정권마저 빼앗아 조선 총독부를 두었다. 군대, 사법, 행정 모든 것을 장악한 일본은 한반도의 경제적 수탈만이 아니라 아예 우리민족을 지구상에서 없애려 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조선인들에게 조선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일본과 조선이 하나라는 내선일체(內鮮一體) 사상을 주입시켰다. 이 정책은 교육 전반으로 추진되었고, 실제 상당수의 어린 학생들에게 주입되어 자신이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일본인들 왜 이렇게 우리에 대해서만 다른 잣대를 가지고 혹독하게 식민 지배를 하고, 지금까지도 자신들이 한 일을 사과하지 않을까?

필자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깊게 고민해보았다. 그러다가 하나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것은 바로 이번에 최임하는 아키히토 일왕의 발언이었다. 아키히토 일왕은 2001년 12월의 생일 기자회견에서 “내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 천황(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속일본기는 793년 당시 간무 일왕이 펴낸 역사서로 간무 일왕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직계 후손인 화씨부이라고 적고 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일본 왕실이 백제 무녕왕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아키히토의 고백으로 일본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자신들이 흠모하는 국왕이 백제의 후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실제로 일본 왕실은 백제 왕실과 깊은 관계가 있다. 백제의 창업 군주인 온조의 어머니인 소서노가 일본으로 건너가 세운 나라가 바로 ‘왜국(倭國)’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일본인들을 욕할 때 ‘왜놈’이라고 하여 비하하고 있어서 ‘왜’라는 말이 매우 나쁜 의미로 인식되고 있는데, 실제 ‘왜’의 뜻은 ‘순하다’, ‘공경한다’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백제를 공경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일본이라는 국명이 나온 것은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고 나서 독자적인 국가 체제를 갖추기 위해 ‘해가 뜨는 근본의 나라’라는 의미의 일본(日本)이라고 붙인 것이다. 그러니 일본은 오랫동안 백제 왕실의 분국(分國)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이러한 한일관계를 완전히 지우기 위해 한반도에 대한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식민지 정책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일체의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일본의 초계기가 한반도에 수시로 출몰하여 긴장관계를 만들고, 아베 총리는 계속 극우적 발언을 하며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었던 과거 일본으로 돌아기고자 하고 있다. 유엔의 지도하에 만들어졌던 일본의 평화 헌법은 이제 휴지조각이 될 처지에 놓여있다. 이러한 일본과 어느 나라가 동맹국이 되려 하겠는가? 이제 일본은 진정 우리나라와 평화의 연대를 원한다면 자신들의 잘못을 낱낱이 공개하고, 김복동 할머니 영전에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를 하여야 한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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