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2대 국왕인 유리왕 21년(서기 2년) 3월, 나라에 큰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성한 돼지를 제물로 바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제관이 실수해 제물로 사용할 돼지가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유리왕은 매우 화가 나 당장 돼지를 찾아오라고 명령했다. 불과 2년 전에도 국가 제사 시 제물로 사용할 돼지가 달아난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왕의 명령으로 돼지를 다시 잡아왔는데, 제관들이 돼지의 도망을 막는다며 그만 다리의 근육을 끊은 상태로 잡아 왔다. 이에 유리왕은 신성한 제물에 상처를 냈다며 돼지를 잡아온 제관들을 엄벌에 처했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제관들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돼지를 쫓았는데, 돼지는 발 빠르게 움직여 이미 국내성(國內城) 위나암까지 도망간 뒤였다. 그런데 돼지를 잡으러 온 제관이 국내성 주변을 살펴보니 이곳은 도읍을 옮길만한 천하의 길지가 아닌가.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졸본성(卒本城)은 높은 산 위에 있어 천혜의 군사적 요충지인 것은 분명했지만, 지형이 좁아 큰 나라의 수도가 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유리왕은 제관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국내성을 새로운 도읍으로 삼게 됐다. 결국 돼지 한 마리가 고구려의 수도를 옮기게 한 것이다.

사실 고구려 사람들은 건국 이전부터 돼지를 신성하게 생각했다. 고구려는 부여로부터 출발했는데, 부여의 주요 관직 중 하나가 ‘저가(猪加)’였다. 이는 돼지를 키우는 관리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직책이었다. 부여와 고구려 사람들이 돼지를 중요시 여긴 것이 문헌에 명확한 근거가 없으나 아마도 사람처럼 잡식성이라는 점에 주목했던 것 같다. 소나 말은 풀만 먹고 사는데, 돼지는 채소는 물론 사람처럼 고기도 먹는 잡식성 동물이다. 특히 인간이 싫어하는 뱀들도 돼지 앞에서는 꼼짝 하지 못했다. 맹독을 지닌 독사라 하더라도 돼지에게는 고양이 앞에 쥐와 같은 존재여서 사람들은 돼지를 신성시 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도 고구려에서는 돼지를 특별한 존재로 여겼다. 제물로 쓸 돼지가 한 왕조의 대를 잇게 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의 고구려 산상왕조 기록을 보면 국왕이 아들이 없어 산천에 기도를 했는데, 천신(天神)이 왕자를 낳아 대를 잇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예언 후 국왕은 감사의 제사를 지내기로 했는데, 하필이면 제물로 사용할 돼지가 또 도망을 갔다. 그 돼지는 주통촌(酒桶村)이라는 작은 마을로 들어갔고, 주통촌의 한 여인이 돼지를 잡아 왕에게 바쳤다. 이 이야기를 들은 왕은 이 여인이 특별하다고 생각해 몰래 이 마을로 와서 그 여인과 정을 통한 뒤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 이름을 ‘교체(郊?)’라고 했는데, 교체는 훗날 동천왕(東川王)으로 등극했다. 이처럼 돼지는 왕의 탄생을 점지해주는 신성한 동물이기도 했다.

부여와 고구려 사람들만 돼지를 신성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다. 신라 사람들도 돼지를 신성시 했다. 바로 신라 최고의 천재 학자인 최치원의 탄생 설화에 돼지가 등장한다. 최치원의 어머니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이 여인을 사모한 황금돼지가 인간으로 변한 모습을 하고 최치원의 어머니를 꾀어 임신을 시킨 뒤 최치원을 낳았다고 ‘최고운전’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처럼 신라 사람들은 돼지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다산(多産)을 하는데다 최치원 같은 천하의 기재가 태어난 것을 보며 황금돼지가 천지만물을 조화시켜 매우 뛰어난 인재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황금돼지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다른 해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특별히 영특하다고 여겼다.

음력 1월 1일이 지나 드디어 본격적인 기해년(己亥年)이 시작됐다. 선인들은 기해년의 기(己)는 기토(己土)를, 해(亥)는 돼지를 가리키는 동시에 수(水) 기운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황금 개띠 해’ 라고 불린 무술년이 좀 척박하고 건조한 기운이 들어오는 해여서 물이 부족하고 화재가 잦았다면, 황금 돼지 해 기해년은 물을 머금고 있어 앞으로 겨울 가뭄이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른 대지에 촉촉한 비가 내려 농작물이 잘 자라듯, 남북 교류의 물꼬가 원활하게 트여서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특히 현 정부는 경제가 나아졌다고 수치로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경기부양책을 꼭 제시하길 바란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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