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옛 등걸에 춘절이 돌아오니 / 옛 피던 가지에 피엄즉도 하다마는 / 춘설이 난분분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자신의 이름마저 ‘매화’인 조선의 어느 평양기생이 남긴 예쁜 시조(時調)다. 지난주 긴 설 연휴 중에 입춘이 지났고 이제 나흘 후면 얼어있던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찾아온다. “우수 뒤에 얼음같이”라는 속담이 있다.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뜻일 게다. 이보다 앞서 눈 덮인 나뭇가지에 봄기운 돌면 이내 알아차리고 남쪽 가지에 꽃망울 맺는 나무가 있으니 잎보다 먼저 피는 매화다. 그래서 매화를 흔히 봄의 전령이라 부른다.

꽃은 아니나 어찌 보면 보기(?)에 따라서는 꽃처럼 생긴 채소 중에도 봄의 전령이 있다. 바로 ‘봄동’이다. 우리나라에서 긴 겨울 끝에 만나는 채소 중 냉이, 달래와 함께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봄동’이며 이는 이름 그대로 봄을 알리는 채소이다. 봄동은 대체로 음력설을 전후하여 겉절이를 만들어 먹는데 식감은 사각사각, 맛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바로 미각으로 즐길 수 있는 봄의 향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리도 맛난 채소를 쓰기는 ‘봄동’이라 쓰고는 모두가 하나같이 ‘봄똥’이라 부를까? 혹여 땅에 납작 붙어 있는 모양이 소똥을 연상시키기 때문인가? 그렇게 들녘에서 소똥처럼 귀함 받지 못하고 자라는 푸성귀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먹는 것이니, 부를 땐 ‘봄똥’이라 부르지만 차마 쓸 때는 봄동이라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혼자만의 생각이다.

봄동으로 겉절이를 만들어 먹으면 겨우내 먹었던 김장김치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싱싱한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특히나 설이 막 지난 지금이 고소하고 달짝지근하니 그 맛이 최고조에 달할 때다. 지금은 수요가 많아 대량재배를 하게 되었지만, 봄동은 예전에 작은 배추를 수확하지 않고 겨우내 그냥 밭에 버려둔 것이라 한다. 상품성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자 그 배추는 끝내 죽지 않고 자라면서 잎이 여러 겹 겹쳐지며 일반 배춧잎처럼 안으로 모여들지 않고 바깥으로 벌어지는 열린 형태의 특이한 모양이 되었다. 그리곤 모질게 춥고 긴 겨울을 나며 그만의 특별한 영양과 맛을 가지게 되었다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마치 독일의 한 양조장에서 추운 날씨에 얼어버린 포도로부터 탄생한 고급 ‘아이스 와인’이나 알알이 톡톡 터지는 느낌을 주는 가스 덩어리의 ‘샴페인’처럼 실로 우연히 발견된 것이 아닌가! 그냥 무심코 노지에 버려둔 것이 맛의 신세계를 연 셈이다. 한편 봄동에 관해 전해지는 다른 얘기로는, 1970년대 새마을 운동과 함께 이 시기에 다수확 품종으로 개량되면서 생겨났다는 설도 있다. 하나, 어느 것이 사실이든 일반 배추보다 월등한 영양에다 풍부한 아미노산으로 인해 달콤하게 느껴지는 특유의 향, 그리고 아삭아삭 전해지는 특유의 식감이 달라질 일은 아니다.

다음은 귀동냥한 내용이다. 봄동은 베타카로틴이 많은 채소로서 이는 항산화 작용을 도와 노화 방지, 암 예방에 도움이 되며 인, 칼륨, 칼슘 등의 풍부한 무기질은 빈혈을 예방해주고 콜레스테롤 합성 작용을 억제해 동맥경화를 방지한다. 또 비타민 C를 많이 함유한 봄동은 된장국이나 찌개류에 들어가면 된장 속의 나트륨을 배출하는 데 큰 몫을 한다. 거기다 피를 맑게 해주며 춘곤증을 막아준다. 봄동을 활용한 요리들을 살펴보면 쌈은 물론 홍시나 연근을 이용한 겉절이를 비롯, 각종 전, 비빔밥, 특히나 육류와 궁합이 맞아 전골이나 불고기 등,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이처럼 봄동을 주재료로 한 많은 요리들이 다 나름의 맛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아무 치장도 하지 않은 봄동 맛이 최고다. 간결할수록 강렬함이 큰 법이니까! 아직 겨울 끝이라 주위는 무채색 일색이지만 아마도 지금쯤 저 남쪽 청산도의 봄동 밭은 마치 푸른 카펫을 깔아놓은 듯 그 풍경이 장관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곧 3월이 오면 그 안에 미처 거두지 못한 봄동에 꽃대가 맺히고 노란 배추꽃이 조롱조롱 사랑스럽게 피어날 텐데~ 자, 이쯤 되면 매화에 견주어 봄동도 봄의 전령이라 일컫기에 손색이 없지 않은가!

박정하 중국 임기사범대학교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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