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0만 인구, 31개 시군의 경기도. 인구와 기초 지자체 규모로는 서울을 제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광역 지자체다. 그리고 시선을 좀 더 확대하면 북한과 접경하며 한반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어 머잖아 닥칠 평화와 통일 시대를 감안한다면 가장 핫한 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기(京畿)라는 말 자체가 고려 조선 천년간 왕도를 보위하기 위해 설치된 외곽지역이라는 뜻이니 서울의 외곽을 의미하는 No.2의 숙명을 오랫동안 감당하여야 했고, 지금도 본질적으로는 크게 변함이 없는 듯하다.

경기도 경제활동 인구의 1/5 이상이 서울로 출퇴근한다.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 도시들, 가령 광명시나 구리시 같은 경우는 1/2에 육박한다. 직장 문제가 아니더라도 ‘능력만 된다면’ 서울로 주거를 옮기고 싶은 감춰진 욕망까지를 감안할 때 ‘서울의 외곽’ 혹은 ‘서울의 베드타운’으로서의 위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예산 규모는 어떤가? 2019년 서울특별시 예산이 35조 7천억원인데 반해 경기도는 24조 3천억 - 처음으로 일반 회계 예산이 20조를 돌파했다. 총액으로는 많이 따라붙었지만 면적과 인구를 생각할 때 아직도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수도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자체가 해당 국가의 브랜드 역할을 한다. 특히 서울 같은 메트로폴리탄이 지니는 이 이점은 결코 간과될 수 없다.

인접한 서울과 경쟁하기에 경기도는 여러 측면에서 약세임은 분명하다. 도시와 농촌과 어촌이 뒤섞인 복잡한 정체성, 그렇다고 랜드마크가 될 만한 천혜의 관광자원이나 유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밀려서’ 사는 경기도가 아닌 ‘진정으로 살고 싶은’ 경기도가 되기 위해선 역시 문제는 경제일 것이다. 산업적 경쟁력이 특출하다면 오지말래도 사람들은 경기도로 온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듯이 경기도는커녕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제조업의 인프라가 획기적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지역 경제와 결합된 복지 인프라의 확충은 민선 7기 ‘이재명호’의 의욕적인 작품이며 이미 다른 지자체의 선도 모델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경기도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주도적인 견인 전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2% 부족하다. 대한민국과 경기도가 복지의 차원에서는 아직 낙후된 지점에 있지만 그렇다고 생존 자체가 위험한 후진국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예언한대로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다. 이것은 단지 문화산업의 시장적 파괴력과 청년 고용의 산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화는 그 자체가 정체성이며 고유 브랜드이고, 궁극적으로는 행복 추구의 과정이다.

내가 경기도민이라는 자각은 단지 경기도 관내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경기도의 문화를 이해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진화하여야 한다. 산업적으로, 지정학적으로, 계층적으로 나누어져 있는 경기도에서 ‘하나의 경기도’, 그리고 동시에 ‘31개의 경기도’라는 마술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은 문화다.

상해임시정부의 지킴이이자 우리 민족의 수호자였던 김구가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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