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업무를 보다가 급한 일이 있어 중단하고 나왔던 적이 있다. 나중에 다시 전화 걸어 그 직원과 통화를 하려 했는데 그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의 창구 앞에도 가슴에도 이름표가 없었다. 경기도 공무원들이 이름표를 달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목걸이용 공무원증 패용이 유행이었는데 도지사가 바뀐 뒤 다시 이름표가 등장했다. 이름표를 패용하게 된 공무원의 반응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다만 반갑다.

책고집 둥지 강연에서도 수강생 모두에게 이름표를 나눠준다. 미리 만들어두었다고 강연장에 들어오는 분들에게 일일이 나눠준다. 이름표를 받는 분들의 표정은 다양하다. 뭐 이런 것까지 하느냐는 표정도 있고, 고맙게 받는 분도 있다. 받기만 할 뿐 실제 달지는 않는 분도 있고, 조심스럽게 가슴 한켠에 다는 분도 있다. 왜 이름표를 나눠주는지 묻는 사람은 없다. 그저 나눠주니 달아야 하는가 싶다가도 귀찮아 한다.

이름표를 나눠주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강연자는 자기 이름으로 강의한다. 수강자는 이름 대신 여럿 중 한 명일 뿐이다. 그게 맘에 들지 않는다. 강연자와 수강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강의에 참여하기를 바랐고 그래서 이름표를 달아준다. 그저 여러 수강생 중 한 명으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기 이름으로 강의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뜻이다. 책고집 회원들끼리 서로를 알아봐주길 바라는 마음은 덤이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리움을 갖는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어쩌다 얻어걸릴지 모르는 이름 모를 꽃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서는 사람은 없다. 꽃의 이름을 알 때 그 꽃을 기다리게 된다. 매화가 언제 피는지, 동백꽃이 언제 피는지, 복수초와 민들레, 산철쭉이 언제 피어나는지를 아는 사람이 그 꽃을 찾아 나들이에 나선다. 동백이 반갑고, 자목련이 즐겁고, 쑥부쟁이가 그리운 건 이름을 알기 때문이다. 기다림이 이루어질 때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싶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가 보고 싶고 기다려진다는 뜻이다. 그의 말이 듣고 싶고 그의 얼굴이 보고 싶은 것이다. 이름을 아는 사람을 만날 때 그의 얼굴과 말과 느낌이 내게로 온다. 내게 들어온 그의 말과 생각에 나의 말과 생각을 포개서 새로운 사유와 문장이 이루어진다. 글쓰기는 거기서 시작된다.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을 다시 듣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식이라면 세상에 그립고 기다려지는 것이 있을 리 없다. 사람을 그리워 한다는 것은, 그의 이름과 얼굴, 그의 이야기가 그리운 것이다. 우린 이미 많은 것을 알지만 앎은 실은 허상에 가깝다. 허상이 아닌 실재의 앎은 수시로 호출되고 호명된 것들이다. 편하게 이름을 부를 수 없다면 그건 아는 것이 아니다. 성철 스님이 그리운 것은 그의 이름과 그의 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그립다. 스님이 놀라운 경지에 오르셨기에 그리운 것이 아니다.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너무나 평범하고 명징해서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이름표를 다는 건 어쩌면 지극히 형식적인 행위에 불과할지 모른다. 중요한 건 이름표를 단 상대의 손을 꼭 잡고 직접 이름을 불러보는 것이다. 그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름을 부른다는 건 앞으로 당신을 그리워하겠노라고 고백하는 일이다. 그렇게 알게 된 이름, 불러 본 이름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게 곧 나의 삶을 규정하고 나의 살아있음을 증거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꽃의 이름, 나무의 이름, 구름의 이름을 아는 것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사람의 이름을 아는 것은 더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며 감격스런 일이다. 그 신산한 설렘으로 너에게 묻는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최준영 작가/거리의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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