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귀족 출신이었단 토크빌(Tocqueville)은 1835년 미국을 방문하고 프랑스와 다른 국가 운영의 특징에 감명받고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남겼다. 신생 독립국가인 미국은 기독교 정신으로 사회적 결속력을 공고히 하는 한편, 지역 공동체 중심으로 정치를 발전시키는 것이 강한 민주주의의 요소라고 보았다. 국가는 이러한 지역 공동체의 계약에 의해 권한을 위임받은 체제이었다. 반면 프랑스는 왕정 체제에서 공화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혼란을 경험하고 있었다. 정치적 혼돈기에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느 쪽에 줄어 서느냐가 정치적 생명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좌우되는 상황에서 자치와 분권을 기반으로 튼튼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미국이 부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발간된 토크빌의 '민주주의'는 지방자치 교과서의 바이블이 되어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에서 공부했던 유학파들에게도 미국 정치는 토크빌 못지않은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당시 암울한 한국 정치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의 빛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분권과 자치를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낭만적 낙관주의로만 추진할 수 없다. 우리의 현실을 진단하고 우리의 역사와 토양에 적합한 모형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식민지 상태에서 독립하면서 미국식 대통령제를 채택한 중남미 국가들이 경험하는 정치 경제적 혼란을 보면서 미국 방식이 시대와 역사를 넘는 무국적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농업 국가시절에 공동체 중심의 자치가 있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를 지나면서 역사가 단절되고 공동체는 황폐해졌다. 근대국가 초기에 경험한 6.25 전쟁은 의식을 단절시켰고, 협력 보다는 생존 본능의 경쟁의식을 확산시켰다.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은 경쟁심리의 화약고가 되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고향을 떠나야 가난을 탈피할 수 있었기에 도시화는 진행되면서 공동체는 단절되었다. 더군다나 아파트 중심의 생활은 이웃조차 단철시키는 생활 구조를 확산시키고 있다. 

그러나 최근 지역 사회가 재발견되는 사회 경제적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 산업사회는 직장과 생활공간이 구분되는 직주분리이었다. 그러나 최근 정보화 사회, 4차 산업 시대에 직장은 생활의 공간과 맥락을 같이 하게 한다. 더군다나 노령 사회가 되면서 정년한 분들은 지역 공동체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변화에 적합한 분권과 자치의 모형 개발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에 의하면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고 한다. 다르게 설명하면 '고속 성장하려면 중앙집권 체제로 추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분권과 자치가 필요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3만 불 수준에서 5만 불로 가려면 새로운 국가 발전 모델이 필요하다. 중앙의 노력으로만 하기보다는 전국의 고유한 특성을 가진 각 지역의 독창적인 발전이 즁요하다. 지금은 중앙정부가 정책과 사업을 결정하고, 단순히 지방의 공간만을 활용하면서 지역 산업정책이라고 하였다. 아니면 중앙정부가 결정하고 지방에 자금을 주면서 대신 집행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지역의 창발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지방이 지역 특성에 적합한 기술 개발을 통해 산업을 유치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역에서는 대학과 기업체가 모여 혁신을 추진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부가 주도할 것이 아니라, 정부는 마중물 수준의 기능만 해야 한다.

우리가 추진하는 분권과 자치는 단순히 정치적인 권력 분산의 의미가 아니라,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필요한 과제이고,  그러한 방향성에 적합한 추진이 되어야 한다. 31개 시군의 다양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경기도가 그러한 혁신 추진체를 통해 분권과 자치가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모습을 선도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원희 한경대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