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돼 보이는 아이에게 엄마가 하는 말을 듣게됐다. “OO이 생일에 갈거야? 네 생일 때는 OO이 안 왔잖아.” 내 생일파티에 오지 않은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야할까? 이런 고민은 왜 하게 될까?

선물의 호혜성에 대해서는 그간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져왔다. 마오리족 원주민은 모든 물건에 하우(hau)라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어떤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받는 것은 그의 정신 일부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담은 선물’이라는 말을 쓰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마오리족은 여기서 더 나아가 선물로 받은 물건에 깃든 정신은 선물을 준 사람에게 언젠가 돌려줘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마오리족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고받는 선물을 보더라도 선물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어떠한 기대관계를 형성한다. 선물에는 어느 정도의 대가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 공동체를 유지하고 구성하는 우리는 그 대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보고 선물을 받아야 한다. 법을 어기거나 사회상규를 벗어나는 선물이라면 거절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물의 대가성 때문에 선거에서는 선물에 대해 엄격히 제한을 가하는 규정이 있다. 기부행위 제한이 바로 그것이다. 기부행위란 정치인 등이 선거구 안에 있는 사람이나 단체 등에 음식물이나 찬조금품 등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기부행위 제한은 비단 정치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는 3월 13일 실시되는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 출마하는 모든 후보자에게도 적용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2004년 개별 조합법 개정에 따라 농·축·수산업협동조합 및 산림조합의 조합장선거를 위탁받아 관리하고 있다. 이전에는 조합이 자체적으로 실시해왔으나 금품수수 등 불법선거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법 개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조합장선거를 규율하기 위해 제정된 「공공단체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기부행위제한기간 중 기부행위를 할 수 없다. 특히, 현직 조합장의 기부행위는 보다 엄격하게 제한된다. 조합장은 선거에 관한 여부를 불문하고 일체의 기부행위를 할 수 없다. 조합의 경비로 경조사에 축의?부의금품을 제공할 때에도 조합장의 직·성명을 밝힐 수 없으며 해당 조합의 명의로 하여야 한다.

기부를 한 사람뿐만 아니라 기부를 받은 사람도 처벌을 받는다. 제공받은 금품의 가액이 10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제공받은 금액이나 가액의 10배 이상 50배 이하에 상당하는 금액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그 상한액은 3천만원에 이른다. 한편, 제공받은 금품의 가액이 100만원을 초과한 경우에는 형사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의 대상이 된다.

이번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부터는 선거범죄 신고 포상금 최고액이 1억원에서 3억원으로 대폭 확대되었다. 신고자는 법에 의해 철저하게 보호되며 금품 등을 제공받은 사람이 자수할 경우 형벌 또는 과태료를 감면한다. 선거법위반행위 신고는 전국 어디서나 1390번으로 할 수 있다.

인류학자 나탈리 데이비스는 <선물의 역사>라는 그의 저서를 통해 선물에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있고, 의미없는 선물은 없다고 말한다. 선물에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언제든 기부행위로 변할 수 있다. 선물은 그 자체로 보답을 자연스레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혼탁한 선거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이번 조합장선거에 참여하는 조합원과 후보자는 주고받는 선물이 갖는 의미를 잘 살펴보았으면 한다. 선물이 한 표를 대가로 삼고 있다면 그러한 선물은 거절함이 마땅할 것이다.

임주현 용인시기흥구선거관리위원회 지도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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