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8월 6일. 전라남도 구례의 지리산 자락에 거주하는 매천 황현이 새벽에 일어나 차분히 절명시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릇에 담긴 마약을 입에 대어 먹기 시작했다. 서서히 기운이 없어짐을 느끼기는 하였지만, 정신은 온전했다. 나라가 이미 없어진 마당에 조선의 선비로 자처한 자신이라도 죽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세종대 황희 정승의 후예이기는 하나 황현의 집안은 몰락 양반 출신이었다. 당대 사회는 명문 거족이 아닌 사람들이 출세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그러니 몰락 양반 출신인 황현에 과거에 합격하여 조정에서 활약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황현의 부친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황현의 천재성이 너무도 대단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부지런히 일을 해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그래서 이 돈으로 아들을 한양으로 유학보내 공부시키고, 그곳에서 명문 제제들과 어울리게 하고자 했다..

황현은 성리학과 양명학을 공부하고 이용후생을 강조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한양에 올라와서 만난 이들이 조선의 개혁을 꿈꾸는 이들이었다. 바로 이건창, 김택영, 강위, 신기선 등 당대 내노라 하는 문사(文士)들이었다. 황현은 이들과 어울리며 세상의 개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세상은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일 뿐이었다.

1883년에 고종 임금은 인재를 널리 구하기 위해 보거과(保擧科)에 1등을 하고도 최종 탈락하는 것을 경험한 그는 더 이상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가 본 조선은 귀신의 나라였고 미친놈들이 다스리는 나라였다. 그래서 그는 조정의 지배층을 귀국광인(鬼國狂人)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리고는 미련없이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는 부친의 고향인 광양에서 구례 만수동으로 옮기고 결코 벼슬자리에 나가지 않을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는 자신이 한양에서 직접 목격한 내용과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들었던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당대 사회의 부조리를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이 바로 ‘매천야록(梅泉野錄)’이다. 자신의 호인 ‘매천’과 들판에서 들은 내용을 기록한 것이라는 ‘야록’을 붙여서 책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그는 나라가 망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자신이 구례 골짜기에 있지만 나라의 정세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한양에서 간행되는 신문인 한성순보를 매일같이 우편으로 받아보기 시작했다. 신문이 간행되고 나서 구례까지 오는데 3일이 걸렸다. 그러니 그는 3일전의 세상 이야기를 받아보게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1910년 8월 3일에 받은 한성순보 내용에 순종이 나라를 일본에 넘긴 사실이 전해졌다. 그는 가슴이 아프고 목이 막히는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며칠동안 한성순보에 나라가 빼앗긴 것에 분노해서 자살한 관료들이나 선비들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한성순보에는 어느 누구도 나라를 위해 자살했다는 기사가 한 줄도 없었다. 황현은 절망했다. 나라가 빼앗겼는데 아무도 죽지 않는다면 이는 거꾸로 나라를 되찾을 힘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자신이라도 죽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황현이 아편을 먹은 것을 알게 된 동생 황완이 해독제인 어린아이 오줌과 생강즙을 먹이려 하니 황현은 거절하였다. 그리고는 동생에게 “세상 일이 이 모양이니 선비가 마땅히 죽어야 할 것이다. 또 오늘 죽지 않으면 장래에 틀림없이 감당치 못할 날이 잇을 것이다…. 내가 약을 먹을 적에 입에서 뗀 것이 세 번이니 내가 이렇게 어리석단 말인가? 라고 하였다. 그리고 약을 먹은 지 하룻 만인 7일 새벽에 죽었다.

그는 절명시 마지막 구절을 그는 이렇게 썼다. “내 일찍이 나라를 지탱하는 작은 공도 없었으나 오직 살신하여 인(仁)을 이룸이요 충은 아니로세” 본인이 의병항쟁을 하지 못한 죄책감과 나라가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죽은 자들이 없기에 초야에 묻인 선비이지만 그래도 자신이라도 죽어야 나라가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문화재청 주최로 서대문형무소에서 매천 황현의 절명시 원본을 공개하는 전시회를 지난 19일부터 개최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린 그의 고뇌가 절명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 이번 3.1운동 100주년을 기리면서 매천 황현의 절명시를 보러 순국의 현장인 서대문형무소에 다녀오기를 권한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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