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수원 읍치를 둘러싸고 있는 성곽의 용두각(방화수류정) 주변으로 흰 옷 입은 백성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날은 바로 고종황제가 승하한지 38일이 지난 국장(國葬)일 이었다. 그래서 수원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모두 상복인 흰옷을 입고 있었다.

백성들이 용두각 일대로 모이자 일본 경찰들은 이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고종의 국장은 덕수궁에서 상여가 출발해 금곡(구리시 금곡리)의 능역에 도착해 장사가 진행되는 것인데 굳이 용두각 일대에 백성들이 몰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백성들에게 “왜 이곳으로 모이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일본 경찰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용두각에 모여든 사람들 중 유독 눈에 띠는 인물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원상업강습소 교사 김노적과 이들의 제자인 20대 초반의 최문순, 박선태, 임순남, 이종상, 김석호, 이희경, 이선경 등이었다. 이들은 갑자기 품에서 태극기를 꺼내 백성들에게 나누어줬다. 그리고는 태극기를 높이 든 채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깜짝 놀란 경찰들은 이들을 즉시 체포했고 수원경찰서 유치장에 감금했다. 이들이 3.1일 만세운동을 하게 된 것은 민족대표 48인 중 한명인 김세환 때문이었다. 그는 삼일여학교 교사로 수업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 3.1만세 투쟁을 기획했다. 자신의 제자들에게 수원에서의 만세 투쟁을 지시했고 이에 제자들은 목숨을 건 투쟁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수원 백성들은 3월 16일 밤에 팔달산 서장대로 올라갔다. 이곳은 과거 정조대왕이 직접 올라와 군사훈련을 지시한 곳이기도 하다. 백성들은 흰옷을 입고 손에 태극기와 횃불을 들고 만세시위를 벌였다.

뒤이어 3월 29일 오전 11시 수원기생조합의 기녀들이 화성행궁을 파괴하고 만든 자혜의원에 검진을 받으러 가다가 의원 정문 앞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날의 시위를 주도한 이는 바로 22살의 김향화(金香花)였다. 그녀는 일제가 자신들에게 성병 검진을 받으라고 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당시 수원의 기녀들은 무용과 기예를 가진 예인(藝人)들이지 일본의 창기들처럼 몸을 파는 여인이 아니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따라서 자신들에게 의료 검진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조선의 문화 전반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세 시위를 벌인 것이다. 김향화는 일제가 만든 ‘조선미인보감’에 수록될 정도로 갸름한 얼굴에 뛰어난 미모를 자랑했고, 춤사위 역시 대단해 검무, 승무, 정재 등 못하는 것이 없었다. 또 탁성인 목청으로 창을 하면 구슬프기가 그지없어 여러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하지만 나라를 빼앗긴 슬픔과 고종의 어이없는 죽음은 그녀를 투사로 변모시켰다.

일제에 의해 고종이 독살됐다는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 퍼지자 김향화는 일체의 가무를 중단하고 근신했다. 그리고 1919년 1월 27일 고종 국상 중 동료 기녀 20여 명과 함께 소복을 입고, 나무 비녀를 꽂은 채 짚신을 신고 서울로 올라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곡(哭)을 했다. 이후 경찰서 군청 등 수원의 식민지 통치기구가 집중된 자혜의원 앞에서 만세 투쟁을 주도하다 마침내 일본 경찰에 의해 구속됐다. 김향화는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는데, 당시 이화학당 출신의 유관순도 같은 감옥에 있었다.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 여성독립운동가들 모두가 유관순과 김향화를 높이 평가하고 그들을 존경했다.

수원 백성들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간략하게 했지만 어찌 수원만이 독립 투쟁의 공간이었겠는가? 대한의 백성 모두가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해 나라를 되찾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민주공화정을 천명한 헌법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는 세계 민주주의사에 유래가 없는 민주공화정 역사의 시금석이 됐다.

내일은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정부를 비롯해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날을 기리는 기념행사를 할 것이다. 하지만 단 하루의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 때마침 김정은과 트럼프의 정상회담으로 북미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았으니 우리 모두 3.1운동 100주년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날로 삼아 우리 민족의 위대함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약대학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