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는 건 아닌가 싶다. 4차 산업혁명 하면 인공지능이니 로봇이니 하는 개별 기술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도, IoT도, 로봇도, 블록체인도, 자율주행차도 아니다. 드론은 진작부터 어린 자녀를 둔 아빠들이 사고 싶은 장난감이었다. 핀테크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도 화폐의 90%는 현금이 아니라 프로그램 속에서만 존재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매개로 우리 사회에 일관된 방향으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하고도 급속한 변화를 가리키는 손가락들이다. 개별 기술을 거론하면서 4차 산업혁명 관련 거시 정책을 생각하다보면 방향을 잃고 혼란에 빠질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과신도 금물이지만 불신도 금물이다. 과학기술은 한순간에 점프하지 않는다. 오늘날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인공신경망 알고리듬은 반세기 전에 이미 세상에 나와 있었다. 신경생물학과 뇌인지과학 그리고 컴퓨팅 파워의 비약적인 신장이 과학적 토대가 되었다. 그들 간의 끊임없는 융합과 창의적인 시도가 인간처럼 학습할 수 있는 기계 탄생의 여건을 성숙시켰다. 마치 아편전쟁이 종이호랑이였던 청나라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을지 모르지만 영국에게는 과학혁명 이후 수백 년 동안 숙성된 배경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이란 선정적인 표현이다. 과학자나 기술자들은 연구개발을 직접 해봤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런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들에게 과학과 기술은 불쑥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난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연속적으로 전진하는 것일 뿐이다.

미시적인 현업에 종사하는 연구개발자들에게는 변화의 기울기가 심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거시적인 시각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분명 혁명이라 불릴만한 총체적인 사회 변화를 겪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건 다른 어떤 표현이건 상관없다.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큰 측면은 물질적 자원을 두고 벌이는 쟁탈전이 아니라 지식을 두고 싸우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발 하라리가 비유한 것처럼 중국이 설혹 샌프란시스코 일대를 전쟁을 통해 점령한다 해도 실리콘밸리의 경제적 가치를 가질 수는 없다. 물건은 사람 대신 기계가 만들고 한계 비용은 제로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자료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작업에 인공지능 사원을 쓰기 시작하고 있으며 급기야 기업의 사외이사로 인공지능이 등장했다. 스스로 진화하는 기계의 출현은 정치, 사회, 경제, 교육, 의료, 복지, 군사, 가족 관계 등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심지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되묻게 한다. 이게 혁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콜룸부스가 조그만 배 몇 척으로 대서양을 건너가기 한참 전에 명나라의 정화는 이미 대선단을 이끌고 인도양과 태평양을 누볐다. 그러나 당시 세계 최강의 국가는 천자국(天子國)의 위신을 세워 조공을 받으면 그뿐 바다 너머의 미지의 세계에 별 관심이 없었다. 무지에 대한 불감증에 관한 한 어쩌면 우리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말로는 4차 산업혁명이다 뭐다 호들갑을 떨지만 정작 깊이 있게 공부해볼 생각도, 창의적이지 못하면 낙오할 것이라는 위기의식도 없는지 모른다. 자신의 인식 틀을 넘어설 용기가 없다면 차라리 전문가 집단에게 운전대를 넘기는 것이 낫다.

4차 산업혁명을 두고 섣부른 아전인수격 해석이 위험하게 넘실거리고 있다. 먹고 사는데 별 걱정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가십거리 수준이고 뭔가 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안개 속이다. 결국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데이터의 도매상이자 소매상이라 할 수 있는 플랫폼의 소유 여부에 따라 사회적 초양극화가 예상되지만, 4차 산업혁명이 포퓰리즘의 혐의가 짙은 정책의 재료로 소비될까 걱정이다. 단기간 내에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해내라는 기대와 요구가 우리의 발밑을 허문다.

4차 산업혁명은 가상세계에서의 신대륙 탐험이다. 과학에 먼저 눈뜬 서구 세력이 대항해시대를 거쳐 전 지구를 식민지화했던 역사를 상기하자. 우리 자신이 참담한 희생자가 아니었던가. 또다시 고비다. 세상은 이미 창의력 경쟁, 지식경제의 시대에 들어섰다. 게임의 규칙은 바뀌고 있고 인간은 다른 종(種)으로 진화 중이다.

이 와중에 우리 청년들은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고 있다. 그들이 미래를 기대하게 할 수 있는 근원적인 정책을 구체화할 때다. ‘피부에 와 닿는’ 단기 대응에만 매달리게 만드는 구조가 있다면 그 또한 4차 산업혁명의 적이다.

정택동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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