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반복이라는 속성 앞에 480여 년 전에 살았던 조선시대 율곡 이이(李珥)가 지녔던 덕목(德目)들은 여전히 의미를 지닌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정치가 율곡 이이는 현재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신사임당과 함께 한국사를 대표하는 모자(母子)다. 우리는 매일 종이돈 5천원과 5만원에서 만난다. 그만큼 친숙한 인물이다. 지폐를 만지며 율곡 이이를 생각한다.

율곡이 살았던 16세기 중반 조선사회는 외척과 권신의 정치권력에 맞서 사림파가 정치의 주도세력이 된 때다. 선조 즉위와 함께 네 차례의 사화(士禍) 속에서 정계에 진출한 사림파가 관직을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으로 분리돼 당쟁이 시작됐다. 정치적, 학문적으로 명망이 높았던 율곡은 안으로는 성리학 이념의 조선식 정착과 백성을 위한 사회경제정책을 수립했다. 당파 간 화합을 위해 당쟁 조정에 앞장섰다. 밖으로는 국방 태세의 안정을 위해 숨을 거둘 때까지 전력을 다 했다. 오늘을 사는 학자나 정치인에게 표상(表象)이 되는 인물이다.

해마다 중부일보가 ‘율곡대상’을 제정하여 정치지도자들에게 수여하는 것은 바로 율곡 이이의 정신을 숨 쉬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희망과 절망이 다툰다. 기대와 실망이 교차한다. 어디가 위급한지 길잡이 해주는 정치인이나 원로가 없다. 수많은 쟁점들이 늘어서 있지만 해결책은 속 시원히 보이지 않는다. 나라를 편안케 하고 백성을 보호하고자 한 율곡 이이의 혜안(慧眼)이 그립다. 그의 민본사상을 숨 쉬게 해야 할 이유다.

율곡(栗谷)이란 아호(雅號)는 이이의 고향, 파주 ‘밤골’에서 따왔다. 그는 16세의 선조를 성군의 길로 이끌기 위해 왕의 학문을 담당하는 경연관의 직책을 맡았다. 군주가 학문에 힘쓰고 정치를 바로 해야 나라의 기강이 바로 잡힌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면서 성리학의 이론을 탄탄하게 구축한 바탕 위에 국부와 민생을 위한 사회적 실천에 주력했다. 율곡은 국가와 백성을 위한 경장책(更張策)을 제시하고 실천했다.

“국가의 기세가 부진한 것이 극에 달했으니 10년이 지나지 않아서 마땅히 땅이 붕괴하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미리 10만의 군사를 양성하여 도성에 2만, 각 도에 1만씩을 두어 군사들에게 호별세를 면해 주고 무예를 단련케 하고, 6개월에 나누어 번갈아 도성을 수비하다가 변란이 있을 때는 10만을 합하여 지키게 하는 등 완급의 대비를 삼아야 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의 기록이다. 율곡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다.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지녔던 학자이자 정치가였다. 이조판서였던 율곡이 병석에 누워서까지 변방에 대한 방어를 역설했다. 선조는 의원을 보내 치료하게 했다. 이때 서익이 순무어사로 관북에 가게 되자 율곡을 찾아가 변방에 관한 일을 묻게 했다. 자제들은 응하지 말 것을 청했다. 그러나 율곡은 “나의 몸은 다만 나라를 위할 뿐이다. 만약 이 일로 인하여 병이 더 심해져도 역시 운명이다.”하고 억지로 일어나 맞이하여 육조의 방책을 일러주었다. 서익이 이를 받아쓰자 호흡이 끊어졌다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나이 48세다. 임진왜란, 조선의 위기를 겪으며 위기상황을 역설한 정치가다. 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민생문제, 경제 분야에서도 늘 구체적인 대책까지 제시했다. 정부 지출의 축소와 세수 확대를 통한 재정확충, 진상(進上)의 감축과 공물과 방납(防納)의 폐단시정, 수령과 착취 근절 같은 세세한 분야까지 제시했다. 모두가 백성들의 이익을 우선한 것들이다.

우리 정치인들의 모습은 어떤가.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은 안중(眼中)에 없고 슬그머니 세비(歲費)나 올려 잇속 챙긴다. 과도한 연봉을 줄이고 특권을 없애야 한다는 소리는 줄기차게 나오지만 국회는 꼼짝도 않는다. 자영업자, 청년실업자, 소상공인은 죽겠다는데 뾰족한 해결책은 못 만들고 있다. 정치가는 정책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학자 같아야 한다. 대쪽 같은 지조로 건의하고 올바른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율곡 이이 같은 학자이자 정치가가 그리운 이유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뚫고나갈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없는 듯해 안타깝다. 역사는 단절이 아니다.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가는 것이다. 어제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요 미래에 펼쳐갈 역사도 우리의 역사다. 그 속에 풀어가야 할 교훈이 있고 답이 있다. 자기 정파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민생을 보듬는 국회다운 국회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

김훈동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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