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 K로 순도를 나타낸다. 순도 100%인 금을 24K라 하고, 전체 중의 순금 비율에 24를 곱하여 K값을 구한다. 그러니까 25%의 불순물이 섞여 순도 75%인 금은 (75/100) x 24 = 18K, 순도 58%인 금은 14K가 된다. 또 K는 소수점 이하를 표기하지 않으므로 순도 98%(이 경우 K는 23.52) 이상이면 순금과 동일하게 24K로 표기한다. 한편 애초부터 순도 100%로의 정제는 현대과학으로도 물리적 불가 영역이라 하니, 세상 만사에 있어 온전한 순수는 다만 추구해야 할 하나의 지향인 것같다.

사실 순도 98% 이상인 24K 금은 환금성이나 저장성 외에 활용도가 낮다. 살펴보면 모든 순수한 것들의 쓸모는 제한적이다. “나, 당신 죽으면 따라 죽을 거야”라는 배우자의 순애를 보자. 감격적이고 사랑스런 서사이긴 하나, 자식과 부모 두고 따라 죽는다면 그런 무책임이 또 있으랴. 지극한 애정의 표현이요 사랑의 지향점일 뿐, 정작 그래서는 안된다. 불순물 25%를 넣어 18K쯤 돼야 반지 같은 악세서리를 만들 수 있고, 14K라야 단단한 것을 씹어 삼킬 의치로 쓸 수 있으며, 만년필 펜촉은 16K를 사용한다. 순도가 낮을수록 쓰임은 늘고 편리는 더해진다. 생각하면 불순물이라는 표현도 하나의 물질을 택해 순수라고 정의한 탓에, 나머지 순수한 성분들이 의미를 잃은 것 아닐까 싶다.

시금석은 귀금속을 문질러 순도를 판정하는 돌판이다. 의미를 확장하여 “하노이회담 결과는 북미관계의 시금석” 처럼 역량이나 가치를 판정하는 기준이 될 사물과 사건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시금은 순도의 시험일 뿐, 순도가 높다 하여 좋은 점수를 주지는 않는다. 감성 표출이나 업무 수행이나 물품 제조에 있어, 때와 곳과 쓰임에 따른 최적 순도는 각각 다르다. 높은 순도와 청정 순수가 답은 아니다. 다만, 순도를 자율할 수 있는 능력의 견지는 중요하다고 할까?

어머니 여읜 상주가 조문객을 맞는다. 물끄러미 영정 사진 바라보며 눈물 쏟아 꺼이꺼이 울다가, 수십년 만에 찾아온 친구 반가워 얼싸안고 웃는다. 방명록을 보다가 박하게 부조한 친구를 향해 분을 내기도 하고, 주방 아주머니 음식 낭비에 야단도 친다. 그러다 슬픔에 젖어 다시 통곡한다. 젊을 때 생각에 어머니 돌아가셨는데 어디 밥이 넘어가겠나 싶었으나, 살다보니 이러한 희노애락의 진솔한 표현이야말로 순정임을 알겠더라.

세련(洗鍊)이란 수없이 물에 씻겨(洗) 닳고, 불에 불려 거푸 두드린(鍊) 후 얻어지는 간난신고의 아름다운 격조이다. 세련을 순수의 사촌쯤으로 여기는 이도 있다만, 두 단어 사이에는 다가설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세련은 일정 불순의 중첩으로, 어둡고 험한 과정을 돌파하여 다다르는 바람직한 경지이다. 오늘의 세련 곧 깔끔하고 원만한 태도나 행위는 그 안에 과거의 수많은 더러움과 실패와 아픔 같은 상처를 품고 있다.

기미년 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이다. 그러나 오늘날도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드잡이질은 그 때에 비해 다를 바 없다. 정부 당국자들이 지나치게 순수하지는 않은지 걱정이다. 내면에 바른 이념과 높은 자존감 지녀야겠으되, 약육강식의 국제정치에서는 불순과 노회함이 일정 요긴한 덕목이다. 명목보다 실질이니, 정치인들이 국익을 놓고 욕심도 부리고 술수도 섞었으면 한다. 국내 정치권의 자기 진영에 대한 지나친 순정 요구로, 진보와 보수간 갈등이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14K, 18K처럼 양 진영을 녹여 넣는 합리적 타협이 필요하다. 이러한 바탕에서 힘을 결집하고, 그 넘치는 역량이 나라 밖으로 분출되길 간절히 바란다. 영롱한 아침 이슬은 불순한 티끌을 씨앗 삼아 모인 수분의 응결이다.

유호명 경동대학교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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