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적힌 안산 비석거리 비석, 주민 민원에 떠돌이 신세 전락… 친일파 송덕비엔 시비 투입 논란
평택은 만세장소 놓고 오락가락·수원은 등록문화재 아니라고 방치… 전문가 "지자체 지속적 관심 절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하지만 당시 격렬했던 만세운동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도시화 과정에서 항일 유적지가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3·1운동을 기록·보전해 후대에 알려야 할 도내 지자체는 항일 유적지가 등록 문화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어, 도내 3·1운동 역사가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중부일보는 항일 유적관리의 실태를 조명하고, 후대에 남길 방안을 3회에 걸쳐 모색해본다.

안산 만세운동의 발원지인 비석거리의 비석들이 "보기 흉하다"는 주민들의 민원으로, 이동을 하기 위해 뽑혀 있는 모습. 사진=중부DB
안산 만세운동의 발원지인 비석거리의 비석들이 "보기 흉하다"는 주민들의 민원으로, 이동을 하기 위해 뽑혀 있는 모습. 사진=중부DB

경기도내 지자체들이 만세운동이 일어난 시위지나 의병활동지 등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도와 전문가 등에 따르면 1919년 경기도의 3·1운동은 총 21개 부·군에서 3∼4월 동안 225차례의 시위에 15만 명 이상의 참여로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시위를 기록했다.

전국적으로 발생한 만세운동을 활성화시키는데 경기지역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도내 지자체는 ‘자기희생정신’ ‘강압에 대한 항거’ 등 만세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시민들에게 알려 자긍심을 고취시켜야 함에도 불구, 대부분의 항일 유적 파악을 하지 못하거나 관리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현 평택역 원평동 방향 광장은 평택 만세운동의 성지와 같은 곳으로, 이곳에서만 3차례에 걸쳐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평택시는 인근에 위치한 렌터카 부지를 만세운동 장소로 파악하고 있으며, 도는 번화가인 평택동 쪽 광장으로 잘못 알고 있다. 1919년 당시 평택역의 주 출입구는 현 원평동 방향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오폭 이후 역을 다시 건설하며 주 출입문이 평택동 쪽으로 바뀌면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광장이 뒤바뀌었다.

안산시의 만세시위지 장소였던 비석거리의 비석은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비석거리는 당시 시흥군 수암면 주민 2천여 명이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했던 장소다. 5개의 비석은 수령들의 공적이 적혀있음에도 불구, 주민들이 “비석들로 인해 무덤가 같다”며 민원을 제기해왔다. 이에 비석들은 수암파출소로 옮겨졌다가 다시 비석거리로 옮겨진 뒤 현재는 수암동 안산읍성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또 일제강점기 당시 아버지에 이어 친일을 하고 총독부를 찬양한 전 대부면장의 송덕비 건립에 시비가 투입돼 논란이 일고 있다. 2011년 대부도 일부 주민들이 시비가 투입되는 마을가꾸기 사업에, 1957년 세워진 김모 전 대부면장의 송덕비 복원과 함께 현대식 송덕비를 새로 건립했다. 김 전 면장은 1945년 선박회사를 세워 인천-대부도 노선을 독점해오다 정원이 넘는 인원 승선과 과적, 선장의 음주로 300여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통운호’의 회사 부천통운조합을 운영하기도 했다.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장은 “김 전 대부면장은 총독부를 찬양하는 신문 광고를 내고, 그의 아버지는 일제의 수탈을 용의하게 하기 위해 마을 길을 넓히는 등의 활동을 했는데 이들의 송덕비에 순국선열들이 통탄을 금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시는 수암동에 위치한 안산교회 자리에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기념탑을 설치할 예정이지만 관내 3개 단체가 각각 무궁화동산, 청포예술공원, 안산교회 등에 세워야 한다고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안성시는 잘못 알려진 만세시위지 등을 재조사를 통해 바로잡고 있다. 1919년 3월 만세운동이 일어난 군청 자리가 1928년 이전한 현 안성1동 주민센터로 잘못 표기돼 현재 안성교육지원청과 안성초 자리로 바로잡았으며, 야학이 진행됐던 안청학원은 안법고 인근이 아니라 현 코스모스 아파트 자리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안성지역의 여성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기생 변매화의 독립운동은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수원시는 항일 유적지에 대해 등록문화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관리를 하지 않고 있으며, 이천시는 담당 직원조차 없어 항일 유적지에 대한 파악도 하지 않고 있다. 화성시에 위치한 독립운동가의 집터 중 제대로 남은 곳은 단 한곳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항일 유적을 바로잡는데, 지자체의 지속적인 관심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당시 일제가 조사한 자료 외에, 인터뷰 등으로 진행된 조사는 잘못된 자료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재조사가 필요하다”며 “지역의 항일 유적지는 등록 문화재가 아니어서 관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는 지자체가 대부분이다. 올해는 100주년을 맞은 만큼, 앞으로 남은 항일 유적지가 사라지지 않도록 관리·보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성·양효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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