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공무원과 관급공사 수주업자 간의 관계를 갑과 을로 표현하는데 일반 국민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 반대임을 공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공무원의 지위가 국민에 대한 봉사자임을 감안하면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국면에 들어가면 어이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 한 민원인에 의해 무식한 공무원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 일이 있다. 행정심판담당관으로 발령받은 직후에 한 6~70대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행정심판위원회 심리기일 통지를 받았는데 왜 수신인 난에 청구인을 특정하지 않고 '○○명 귀하'라고 표기하느냐는 것이 그 요지였다. 수신자가 여러 명일 경우 문서 하단에 일일이 수신자명을 기재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표시하는 관례에 대한 이의제기였는데, 이때만 해도 그냥 좀 독특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그 후 이 사람의 행정심판청구가 각하(당사자의 청구가 법정 요건을 갖추지 못해 배척하는 재결)되자 이를 문제 삼는 전화 및 팩스 민원이 계속 이어져서 직원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게 되었다. 사실 이분은 경기도 밖의 지역에 거주하는 분인데 경기도에 '본부 및 산하기관, 각 시?군청, 각 면사무소 등에 설치되어 있는 모든 팩스번호와 사무실의 이름'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하였었다. 한 시(市)에서 정보공개결정을 하면서 수수료 250원을 부과하자 이에 대하여 행정심판청구를 하였던 것인데, 청구취지를 '돈에 환장 들렸나? 청구정보를 공개하라는 재결을 구함'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이러한 수수료 징수에 관하여는 별도의 불복절차가 있기 때문에 행정심판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러던 중 우리 부서의 모 사무관을 집중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정보공개청구와 관련하여 경기도의 한 산하기관이 공개한 내용이 불충분하다고 하며 이분이 행정심판을 청구하였는데, 위 기관은 답변서를 심판청구일로부터 3개월여 지난 뒤에 경기도행정심판위원회에 제출하였다. 행정심판법 관계 규정에 따르면 심판청구서를 접수하거나 송부 받은 피청구인은 10일 이내에 청구서와 답변서를 위원회에 보내야 한다. 이 기관은 주로 연구 활동을 하는 재단법인으로 공무원조직이 아닌 까닭에 관련 규정을 잘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청구인이 담당 직원에게 '행정심판법을 위반한 피청구인에게 청구서를 반환'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런 경우 반환해야 할 근거규정이 없으므로 곤란하다는 취지의 대화가 양자 간에 오고 갔고, 이에 관하여는 문서로도 답변을 하였다. 

그러나 이를 납득하지 못한 민원인과의 전화 응대 과정에서 발신자의 욕설과 폭언에 대해 담당 사무관이 통화내용 녹취 및 통화 종료 고지를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이분은 국민신문고에 '무식하고, 멍청하고, 한심한 놈 김○○아'라는 제목으로 욕설이 포함된 민원을 제기하였다. 그 이후 관련 공무원의 자필 사과문을 요구하기도 하면서 계속 비슷한 내용으로 수차례 진정 등 민원을 제출하여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관련 규정에 따라 반복민원으로 종결처리 한 바 있다. 

이에 관한 안내문을 받고 이분이 또다시 행정심판청구서를 제출하였는데, 청구의 대상이 되는 처분의 내용에는 '무식한 것들이 아직도 주둥이는 살아서'라고 기재되어 있고, 청구취지와 이유 부분에는 '개나발 불지 마라는 재결을 구함'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문서 말미에는 "향후 제출하는 문건부터 전결권자 김○○을 개 같은 X(여성을 낮잡아 이르는 대표 비속어를 이분은 적나라하게 사용하고 있으나, 차마 지면에 그대로 노출할 수가 없어서 X처리하였음)이라고 호칭해도 감수하기 바람"이라고 호통치고 있다. 이분은 개를 무척 사랑하는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접수된 다른 행정심판청구서 보충서면에서도 이분은 '어이 개 같은 심판수행자 이○○'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보면.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드는 생각은, 한 사람의 악성 민원으로 인해 초래되는 행정력 낭비는 어찌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국가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임이 국가공무원법에 명시되어 있다. 지방공무원법에는 그와 같은 명시적 규정이 없지만, 지방자치행정의 수행자로서 지방공무원은 해당 지역주민에게 봉사할 의무가 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경기도 공무원의 도정수행 행위는 당연히 경기도민들의 안녕과 복지를 위한 공공재가 된다. 공공 서비스가 어떤 한 개인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도 안 되지만, 그 개인의 지속적이고 도발적인 민원에 응대하느라 도민 일반의 공익적 요청에 부응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더군다나 그 개인이 다른 지역 주민일 경우에는 어떠한가?

또 한 가지는 행정심판의 청구 요건과 관련해서이다. 행정심판은 위법 또는 부당한 행정처분으로 인해 권리나 이익을 침해당한 사람이 준사법기관인 행정심판위원회에 그 권리 또는 이익의 구제를 청구하는 것인데, 행정소송과 달리 공식적인 심판비용이 없으므로 경제적이고 또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되는 장점이 있어 최근 이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물론 권리의 사후구제 제도를 많은 사람이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권리나 이익의 침해라고 볼 수 없어 행정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음이 명백한데도 위 사례처럼 순전히 공무원 골탕 먹이기 위한 청구로 비칠 수 있는 경우에 이르면 이는 제재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행정심판법에도 소송처럼 심판비용에 관한 규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김향숙 경기도 행정심판 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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