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 시조 묘역인 조경단(肇慶壇)은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640-9에 위치한다. 전주이씨 시조는 신라시대 사공 벼슬을 지낸 이한이다. 묘가 아닌 단이라고 한 것은 시신이 묻힌 자리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조상의 시신이나 묘를 잃어버린 경우 단을 세우고 거기에 제사들 드리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일반적인 것이다. 조경은 묘 이름인데, 왕가의 묘는 묘호를 붙였다. 영릉·홍릉·준경묘 등이 그 예다. 조(肇)는 시작하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조경단은 조선왕조가 비롯된 경사로운 자리라는 뜻이 된다.

조경단은 전주의 진산인 건지산(99m) 자락에 있다. 예로부터 건지산은 왕기가 서려 있어 제왕이 난다는 소문이 있어 왔다. 백담 구봉령은 '백담집'에서 “산세가 웅장하고 분방하여 왕도의 기상이 서려 있다. 봉황이 춤추고 용이 날며 해문산이 일어나 안산이 되었다. 오백년 뒤에 이씨 성의 왕이 일어나리라”는 글이 있었는데, 이때에 와서 과연 그랬다라고 하였다.

전주이씨들은 시조 이후 목조 이안사까지 전주에서 기거하며 지방호족으로 세력을 펼쳐왔다. 특히 무인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16세손 이의방은 정중부·이고와 함께 무신의 난을 일으켜 왕과 문신들을 죽이고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4년 후 정중부의 아들 균이 보낸 자객에게 살해 되었다. 그의 동생 이린은 이성계의 6대조다. 형과 달리 문신으로 문극겸의 넷째 딸 남평문씨와 혼인하여 장군 이양무를 낳았다. 이양무의 장남이 목조대왕 이안사다.

이안사가 전주 관아의 한 기생을 좋아하였는데, 산성별감이 그 기생을 취하려고 하자 싸움이 벌어졌다. 이 문제가 조정에까지 알려지자 안렴사는 역모로 몰아 이안사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이안사는 재빨리 식솔들을 이끌고 처가가 있는 강원도 삼척 활기리로 피난하였다. 그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각각 천하명당인 준겸묘와 영경묘에 모셨다. 그러나 전주의 산성별감이 삼척안찰사로 임명되어 오자 다시 원산으로 몸을 피하였다.

원산·함흥에서 터를 잡자 오동천호 겸 원의 관직인 다루가치에 임명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이행리(익조), 손자 이춘(도조), 증손 이자춘(환조)이 천호 관직을 계승하였다. 고손 이성계는 선조들이 닦아 놓은 세력을 기반으로 홍건족과 왜구토벌에 공을 세우더니 위화도회군을 통해 조선을 세웠다. 전주이씨들이 여러 대에 걸쳐 전주를 떠난 사이 시조 묘는 돌보는 이가 없어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왕이 된 태조가 묘를 백방으로 수소문해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건지산에 시조의 위패를 모시기 위한 단을 세우고 조경단이라 이름 하였다. 그리고 토성을 쌓아 이를 보호토록 하였다. 현재의 조경단은 고종 35년(1898) 설치된 것으로 단을 쌓고, 비를 세우고 관리를 배치하고, 매년 한 차례씩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비석에 새긴 ‘대한조경단’이란 글씨는 고종의 친필이다.

이곳의 산세는 호남정맥 만덕산(765.5m)에서 비롯된다. 만덕산은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갈라져 나온 금남호남정맥이 마이산과 부귀산를 세우고. 모래재에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갈라진다. 모래재에서 시작한 호남정맥은 멀리 광양 백운산까지 이어져 가는데 그중 첫 산이 만덕산이다. 만덕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맥이 묵방산(527.4m)과 기린봉(306m)을 거쳐 전주의 서쪽 끝자락에 건지산(99.4m)을 세웠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산세는 점차 순해졌다.

혈의 크기는 용의 변화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데, 조경단으로 이어지는 맥은 마치 거대한 용이 내려오는 모습이다. 담장 내의 용맥들도 변화가 크다. 이 맥을 받는 어디엔가 시조 이한의 묘가 있었을 것이다. 용맥으로 보아 대혈 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어 아쉽다. 청룡과 백호는 팔로 감싸듯 묘역을 안아주며 보국을 형성하였다. 수구는 좁고 앞의 도로와 논은 평탄하여 이상적인 명당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전주이씨들이 조선시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각개각층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조상 묘의 음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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