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교구청에서 근무하던 때, 교구에서 발행하는 ‘외침’ 지의 해외 탐방 코너를 준비하기 위해 캄보디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캄보디아라는 나라와 교회를 탐방하면서 만났던 캄보디아 젊은이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충격과 상처 그리고 경제난으로 궁핍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은 살아 있었고, 왠지 모를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공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귀에 이어폰을 꼽고 신호등 앞에서 스마트폰에 정신을 빼앗긴 채 기다리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첨단 기술의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왠지 우울하고 생기 없어 보이는 그 학생의 눈은 캄보디아에서 만났던 청년들의 눈과는 분명 달랐다. 자녀를 잘 먹이고 입히며,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학교와 학원에 보내고 뒷바라지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많은 부모들이 생각하지만, 정작 자녀가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최근 ‘버닝썬 사태’로 한국사회가 시끌벅적하다. 외신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K팝스타를 길러내는 시스템에 존재하는 심각한 문제를 지적한다. 곧 젊은이들이 인성과 도덕 교육을 받아야 할 시간에 노래와 안무를 가르쳤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K팝가수 지망생들만 그럴까? 그들을 우상처럼 따르는 젊은이들은 어떨까?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제대로 된 인성과 도덕 교육을 통해 인간답게 살도록 잘 교육받고 있는지 진지하게 묻게 된다.

요즘 ‘열혈사제’라는 드라마가 화제인가보다. 수단(사제복)과 어울리지 않는 ‘분노조절장애 가톨릭 사제’의 괴팍한 모습이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사실, 인성과 도덕 교육은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지망하는 학생을 지도하는, 필자가 몸담고 있는 신학교 양성 과정에서도 매우 큰 숙제다.

가톨릭에서 사제가 되려면, 7년간의 과정(군대까지 9년)을 거쳐야 한다. 사제 지망생은 방학을 제외한 14학기를 기숙사에서 의무적으로 공동생활을 하며 사제 양성 수업을 받아야 한다. 입학하면서 졸업 때까지 공동체 생활을 통해 타인과 함께 사는 법을 익히며, 그 안에서 역할과 책임을 맡으며 봉사하는 법을 배운다. 신학교가 추구하는 인성, 지성, 영성, 사목 교육에서 가장 밑바탕이 되는 것은 인성 교육이다. 인성이라는 토양이 마련되지 않으면 다른 교육이 결실을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성이라는 것이 정해진 과정을 밟는다고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사제 지망생들이 이전에 받은 인성과 도덕 교육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 형성되지 않은 인성을 성인이 되어 형성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가정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에 따라 이미 많은 것이 결정된다. 그런데 이 고민은 신학교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다. 제대로 된 인성과 도덕 교육을 받으며 올바른 인격을 형성하고 성장해야 할 시기에, 청소년들은 기계적으로 답해야 하는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 우정을 쌓고 친교를 맺으며 인격의 소중함을 배우고 보다 넓은 세상을 접하며 꿈과 희망을 키우는 대신, 학원에서 혹은 인터넷 게임에서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어른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많은 돈과 열정을 투자하지만, 실제로 자녀들은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다. 더군다나 현재 한국사회는 교육하는 힘을 잃어버린 듯하다.

중요한 것은 인성과 양심을 갖춘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다. 인성과 양심은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형성된다. 친밀한 인격적 관계 안에서 함께 삶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며, 자유와 사랑의 가치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녀를 학교나 학원에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부모가 함께 길을 걸으며 친구가 되어줄 때 가능하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고민을 나누며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함께 찾아갈 때 비로소 가능하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은 관계 안에서다. 나와 다른 타인이 존재한다는 것, 나 아닌 다른 자유로운 존재가 있다는 것, 그것에 대한 인식이 사람을 성장시키고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한다. ‘버닝썬 스캔들’은 인간을 인격으로 대하지 못하고 쾌락이나 욕심의 도구로 삼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화의 일면을 드러낸 사건이 아닐까?

한민택 수원카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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