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사태가 여전히 진행 중에 이번에는 남성 아이돌 그룹 가수가 알고 지내던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 중이란 소식이다. 성폭행을 둘러싼 젊은이들의 일탈 논란이 끝도 없다. 나는 이 즈음에 시어도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의 소설 '미국의 비극(An American Tragedy)'을 영화화한 '젊은이의 양지'를 떠 올렸다. '양지'를 차지하려는 젊은 주인공의 욕망을 위협하는 상황이 잘 연출된 영화로 원작보다 영화의 작품성이 더없이 알려진 작품이다. 원작은 직선적이고 거친 문체로 채워졌지만 감독의 욕심은 러닝타임 내내, 감미롭고 인상적인 장면으로 채워졌다. 제목이 말해주듯 영화는 자본주의에 의해 변질되어 가는 한 젊은 남자를 통해 '아메리칸드림'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지금도 우리 안방가를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막장드라마의 그것처럼 가난한 청년이 첫 애인을 두고 아름답고 부잣집 딸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다소 뻔한 내용이다. 

얘기의 정점은 주인공인 젊은 청년이 버닝썬 사태의 중심에 있는 우리 청년들의 그것처럼 만나는 화려한 생활의 유혹이다. 그는 자신의 가난한 과거를 성장해 온 고향에 수류탄을 내던지듯 뿌려두고 상류사회와 신분 상승에 대한 동경으로 전 애인 마저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하지만 청년은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원작 소설은 기본적으로 단조로움의 틀 안에서 가난, 결손 가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청년을 끊임 없이 다루고 있다. 그리고 비극적 상승과 몰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소설보다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강조하면서 당시 사회의 배경마저 함축해 보여주고 있다. 양심과 야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이는 미국과 우리 사회에도 이렇듯 예전부터 현재까지 존재해 왔다.  

승리 등 젊은이에게 '악마의 재능'이라는 표현이 따라다니는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충분히 그들에게 이런 능력이 있고 시청자들 역시 성공한 젊은이로 치켜세운 방송에 묻혀 철저히 방관해 왔다. 그래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대중의 호불호가 갈려도 매체들은 충분한 여론의 뭇매를 각오하고 이들을 기용해 왔다. 물론 지금의 경우는 상황이 달라졌다. 알아서 방송이 꼬리를 내려서다. 이제 출연진 한 명의 일탈로도 프로그램 전체의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 심지어 이들과 관계될 수 있는 배우들도 도외시 당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출연진의 주변 상황과 인성을 검증하려는 움직임은 당연하기만 하다. 악마의 재능에서 천사의 인성이 중요하게 되는 이유도 있다.   

승리는 지금 자신이 공인으로 부적절한 사업체에 관여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고 고백을 하고 있다. 그리고는 "저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럽다"라고 했다. 승리의 말대로 지금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도 안 믿을 것이고, 경찰 수사에서 무혐의를 받는다 해도 사람들은 또 경찰에게 돈 찔러줬다고 욕할 것이 뻔하다.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그가 잘못된 사업체라는 표현한 주체가 버닝썬이라는 유흥업소란 점이다. 애초에 공인으로서 사건사고가 많은 유흥주점에 발을 담그지 않았어야 했음에도 젊은 나이에 그는 이를 즐겨 했다. 미성년자가 자신이 관계된 업소에서 술을 마시다 경찰에 적발되고 더구나 이를 막기 위해 클럽 측에서 전직 경찰에게 돈을 준 게 드러나며 더구나 클럽 안에서 마약을 한 사람이 나왔다면 얘기는 끝이다.

다시 버닝썬과 관계된 인물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그야말로 얘기는 다시 네버엔딩 스토리로 치닫고 있다. 젊은이들이 이성 친구들과 어울리고 여행 가는 것을 나무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금 승리는 "솔직히 그때 그런 행동하는 게 아닌데"라는 후회를 하고 있다. 모든 게 의혹이 되니깐 두렵다는 말이 더 가깝다. 그의 말대로 국민들은 지금 많이 화가 나 계시다. 신뢰가 무너지며 많은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끼면서 분노가 집중된 결과다. 그의 말대로 모든 것에 후회스럽고 반성해야 한다. 사적인 얘기들을 논할 때가 아니다. 얘기가 복잡해지면서 거론되는 모든 이슈나 사건이 이제 정치 프레임으로 옮아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송나라 시대 학자 주자는  "若將際去無非草 (약장제거무비초) 나쁘다고 베어버리자니 풀 아닌 게 없고 好取看來總是花 (호취간래총시화) 좋다고 취하여 두고 보자니 모두가 꽃이다"라고 말했다. 풀과 꽃의 경계는 이렇게 모호하고 선악의 관계도 여기서 멀지 않다.  꽃만 그렇겠는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문기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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