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타당성 조사는 무분별한 국책사업으로 인한 예산낭비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예산은 국민들의 혈세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비타당성 조사의 타당성이나 방법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특히 도로나 철도 부문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이 부풀려져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비타당성 조사는 예산낭비를 미리 검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였다. 그런데 1999년에 도입되어 20년 만에 개편되는 예비타당성 조사제도는 국민들의 혈세를 더 많이 낭비하도록 개악된 것 같다.

정부는 지난 1월 24조원에 달하는 예타 면제 사업을 발표하여 내년 총선을 위한 선심성 정책을 추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정부가 앞장서서 마구잡이 토목사업을 독려하는 예비타당성 조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업으로 나누어 실행하고, 수도권은 경제성 비중을 높이고 비수도권은 경제성 비중을 낮추는 대신 지역균형발전의 중요도는 높인다고 한다. 일견 개편방향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균형발전보다 선심성의 예산낭비 사업들이 무분별하게 추진되도록 길을 열어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예비타당성 조사기간을 평균 1년 7개월에서 1년 내에 단축시키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내년 총선 전에 지방의 숙원사업들을 통과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 표명으로 보여, 사실상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제도개편이라는 비판도 많다. 더욱이 경제성 분석만 전문기관이 하고 최종 결정은 기획재정부 내에 설치되는 재정사업평가위원회가 담당하여 결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사업추진을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결국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제도의 개편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완벽하게 정치적 수단으로 만들고 있다. 검증을 목적으로 했던 예비타당성 조사는 이제 형식적인 통과의례가 되고 말았다.

지역균형발전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지역균형발전은 경제성이 떨어지는 토목사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경쟁력과 혁신역량을 높이고 산업기반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달성된다.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사업을 정치적으로 결정하여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는 사업은 결국 국민들 모두에게 국가부채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사업들도 적자사업이 많은 것이 현실인데, 경제성 항목을 낮추면 그만큼 부실사업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개편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환경파괴와 예산낭비를 한 사업으로 평가한다. 실제 이명박 정부는 직접고용 외에 주변 음식점이나 외주업체 등 이른바 ‘간접’고용효과까지 포함하여 4대강 사업의 고용효과를 부풀렸다. 그런데 현 정부가 사업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직접고용뿐만 아니라‘간접’고용효과도 평가하겠다고 하니 그야말로‘내로남불’이다. 결국 잘못된 소득주도성장정책으로 일자리를 잃었으니 대신 토목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려는 꼼수로 보인다는 일각의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번 예비타당성 조사제도 개편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득표 전략이라는 비판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역민들이 누리는 다소의 편익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어떠한 사회적 가치와 명분을 붙이더라도 토목공사는 토목공사이며 4대강 사업과 마찬가지로 재벌 건설업자들과 지역토호들을 배불릴 것이다. 물론 대규모 재정이 풀리니 경제성장률은 높아질 수 있을 것이고 4대강 사업과 마찬가지로 일자리 창출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개편되는 예비타당성 조사는 국가부채를 증가시켜 국민들의 부담을 높일 것이며,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선심성 공약을 가속화시키면서 지역민원사업의 통과 창구로 전락될 수도 있다.

김은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