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학생 A(15)군이 도박 빚으로 시달리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를 찾았다.

A군은 “도박을 끊어도 늘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했고, 친구들 사이에서 돈 때문에 따돌림 대상이 됐다”고 했다.

채무는 5초면 승패가 결정되는 스마트폰 불법 도박 ‘사다리게임’으로 5만 원을 배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친구한테 빌린 5만 원을 갚지 못해 또 다른 친구가 대신 갚아주고 10만 원으로 채무가 늘어났다.

이자율 100%, 어른들도 상상하지 못하는 이율은 일주일도 안 돼서 20만 원이 됐다.

친구들은 돈을 갚으라며 집으로 찾아왔고 “돈을 갚지 않을 경우 왕따를 당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

도박 중독의 중학생은 가출을 했고 학부모가 학교에 항의를 했다.

돈을 빌려 준 아이들은 학교 밖 친구들을 소개해 준 대신 소개비를 받고 다시 이율 100%의 사채가 시작됐다.

A군 부모는 불법인 줄 알면서도 아들이 학교 생활에 지장이 있을까봐 도박 빚을 갚고 사태를 수습했다.

청소년 스마트폰 불법 도박 중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 수록 도박에 손을 대는 학생들은 늘어나고 센터를 방문해 상담 받는 수도 증가하고 있다.

김정열(50)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인천센터장을 찾은 건 이 때문이다.
 

-스마트폰 도박에 빠져드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평생 한번이라도 돈내기 게임을 경험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대답한 청소년이 전체 1만7천520명 가운데 47.8%로 나타났다. 절반은 돈내기 게임을 했다는 건데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를 첫 조사한 2015년보다 약 6% 늘어났다. 주목할 부분은 스마트폰 도박인 일명 사다리,달팽이,그래프 등이나 카지노,블랙잭 등 불법 인터넷 도박을 하는 청소년들이 전체 5%를 넘었다. 한 학급에 2명 정도는 불법 도박을 한다는 이야기다.”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도박에 접근하기 쉬울 것 같다.
“PC로 접근했을 때보다 스마트폰을 통해 접속했다는 응답이 3배 가량 높다. PC 내기 게임은 평균 95.5분이 걸리는데 불법 스마트폰 도박은 37.4분이면 끝난다. PC 결제는 까다로운 경우가 종종 있는데 스마트폰은 휴대폰 인증번호, 계좌번호 등 단순한 개인정보만 입력하면 결제가 가능하다. 실제 온라인 내기 게임에는 평균 25만 원 정도를 쓰는데 스마트폰 도박에는 40만 원 이상을 사용한다.”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도박에 쉽게 빠지는 이유를 분석하자면.
“스마트폰은 게임 시간도 빠르고 접근성도 쉬운데다 결제가 쉽다는 여러가지 이유가 접목됐다. 청소년들에게 도박은 그 자체가 재밌고 승리를 하면 쾌감과 함께 금전적인 보상이 따르기 때문에 빠져든다. 또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이 하면 “나도 해야지”라는 단순한 이유도 있다. 성인사이트와 달리 부모의 주민번호만 있으면 접속할 수 있는 것도 문제다. 최근에는 개인 방송을 통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사실이 아닌 잘못된 정보를 줄 때도 많다. 도박을 했던 진행자가 돈을 따는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이런 설명들은 내가 조절을 할 수 있을 때 선별해서 들을 수 있는거지 나쁜 결과가 오는 것을 알면서도 집착하게 되면 그게 중독인 거다.”

-실제 중독 청소년들이 많은가.
“인천센터가 설립된 2015년 8월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2016년 7명, 2017년 8명, 지난해 28명으로 증가했다. 도박 문제가 심각해지고 지역사회 내에서 센터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자 학교에서 연계해 방문하거나 부모들이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 방문하고 있다. 한 학생은 도박 중독으로 점점 돈을 잃다보니 중고사이트에 없는 물건이 있다고 허위 글을 올리고 돈을 편취했다. 이 돈으로 다시 도박을 해서 갚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 결국엔 경찰에 사기 혐의로 고발돼 보호관찰명령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청소년 도박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도박 중독은 평생을 두고 관리해야 한다. 방심하거나 관리하지 않는 상태에 놓이면 회복이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과 조기 치료다. 초기 단계에 개입할수록 자발적 회복 가능성이 높아진다. 부모들은 자녀가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청소년들이 하는 도박은 불법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뒷받침 돼야 하고 불법사이트에 청소년들이 접근할 수 없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의 역할은 무엇인가.
“도박중독의 예방홍보와 치유, 재활을 주요 업무로 한다. 학생과 직장인 등 대상자별 특성을 고려해 찾아가는 예방교육을 하고 있고 지역에서는 지역 사회와 연합한 캠페인을 통해 도박 중독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도박중독자나 그 가족을 대상으로 개인 상담을 하고 사례 관리와 집단 상담 등을 하고 있다. 정규 상담이 끝난 후에도 1년 동안 추후 관리를 실시해 대상자들의 회복을 돕고 있다. 특히 재정 법률상담 서비스를 통해 도박중독자들의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지역 센터 기능은.
“우리 센터는 개소부터 치유재활사업에 주력했다. 집중 노력 덕분에 12회 상담을 종결한 이후 1년 이상 도박을 끊은 분들이 전체 80.2%를 차지했다. 지역에서는 치료공동체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치료공동체 프로그램의 목표는 단순히 중독 행동만의 중단이 아니라 중독자 개인의 정체성과 생활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과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하면서 자신들의 태도와 가치, 행동들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치료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석한 중독자들은 도박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빚 독촉으로 인한 고통을 동료들과 나누면서 치유의 경험을 하게 된다. 또 다른 중독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서로의 회복을 돕는다. 치료공동체 프로그램을 통해 회복한 분들은 자신이 받은 것을 다시 중독자에게 나눠주기 위해 캠페인 활동에 같이 참여하고 센터에 나와 회복경험담을 이야기한다. 가족들도 처음에는 아들이나 남편의 도박문제로 센터를 방문했다가 가족기초인지행동프로그램, 12단계프로그램을 통해 중독자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면서 센터에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하기도 한다. 상담사들과 가족들 모두 사회를 통해 도움을 받은 것을 회복하면서 다시 나눔을 실천하면서 지역사회에 되돌려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리 센터의 생활철학인 “당신만이 할 수 있지만 당신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중독에서 회복될 수 있는 길이다.”

-반대로 지역 센터의 어려움이나 한계는.

“지난해 인천의 사례를 비춰보면 지역 도박중독자 비율은 4.8%로 인천 인구 중 14만 명이 위험대상이고 문제도박자도 2만6천명이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지역 센터를 내소한 사람은 1천65명으로 4%정도에 그쳤다. 도박중독 치유 서비스 특성상 대상자가 스스로 찾아와 상담을 원하는 경우에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치유서비스의 한계가 있다. 도박 중독자들도 도박문제의 인식이 낮다 보니 적절한 치유를 받지 못해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하는 경우가 번번이 발생할 때는 안타깝다. 가족들도 도박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빚을 갚아주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 오는 경우도 있다. 이들을 위한 장기간, 집중적인 치료가 이뤄져야하나 센터의 직원들 신분이 불안정한 것은 한계로 꼽힌다. 위탁사업이다 보니 위탁기관이 변경되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고용의 문제로 인해 센터 상담사나 직원들의 이직률이 잦다보면 결국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점차 2~3배 늘어나는 접수현황과 확대되는 사업들로 인해 인력의 한계로 인해 서비스 질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도박의 현주소는 어떤가.
“도박 연령이 갈수록 어려지고 있다. 청소년 도박 문제 뿐 아니라 한창 생산 활동을 하는 20∼30대의 도박문제가 점점 심각화 되는데 이에 대한 현실 인식이 부족하다. 아직까지 도박 예방교육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우리 센터는 건물 9층에 위치하는데 실제 내방자들이 사회적인 낙인과 편견이 두려워서 걸어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도박중독은 병이고 치료받아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높은 도박중독 증가와 막대한 피해 금액, 갈수록 낮아지는 연령층, 모바일 접근성용이 등 도박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 실제로 사회 유명인들 중 연예인들이 도박 중독 문제로 자숙했다가 몇 년 뒤 시간이 흘러 그 사건을 마치 재미있는 경험담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심각하다.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큰 우리나라에서 도박문제에 대한 강력한 대처가 필요하고 대중매체를 활용한 도박문제의 심각성과 폐해를 금연 광고처럼 지속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

-목표가 있다면.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인천센터에서 일하면서 늘 나는 여기 왜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 과거 알코올중독 사례관리를 하면서 중독자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는 중독 관련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도박중독자를 대면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왜 이곳에 왔을까? 왜 이곳에 있을까?”를 매일 물어본다. 중독은 중독자 한사람만의 문제가 아니고 가족전체의 문제이고 사회적인 문제다. 알코올중독자는 대부분 가족이 해체된 상태에서 센터를 방문했었다면 도박중독자는 젊은 층이 많다보니 가족들이 유지돼 있고 해체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도박중독자 한명이 아니라 가족 전체 더 나아가 지역사회 구성원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에 우리 센터가 작은 기여가 되길 바란다.”

조현진기자/chj86@joongboo.com

사진=윤상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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