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에서 기억나는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있다.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범인을 추적하는 도중에 갑자기 중앙에서 대학 데모 진압에 출동하라는 지시를 받고는 시위 현장으로 출동한다. 이 장면을 예로 들면서 국가경찰을 지방자치 경찰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로 삼았다. 실제 지금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이원화 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특히 자치경찰로 운영하기 위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여러 대안이 논의 중이다. 경찰공무원의 보수 지급, 장비 구입비 등을 위해 지방세를 확충해주자는 주장과 관련 비용을 중앙정부가 이전해 주자는 주장이 맞서있다. 한편으로 자칫 경기경찰청과 경기도지사 소속으로 있는 경기자치경찰본부와의 업무 수행과정에서 건물, 시스템, 장비 등의 비용이 2중으로 지출될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흔히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는 데 실제 이러한 인사, 보수, 재정의 명확한 배분 기준없이 추진하고 나면 집행 과정에서 더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강원도 산불 사태 이후에 소방의 국가직 전환이 큰 화두가 되어 있다. 부족한 소방 장비와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줄지어 달려와 지원하는 모습은 깊은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행정 협조가 가능하도록 소방직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다는 것이 국민 정서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12만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의용소방대원 등을 포함하여 100만 소방가족이라는 표현이 있으니, 방향만 맞다면 국민적 동의를 끌어내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지방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소방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받는 수당도 지역별로 다르고 장비도 지역 재정 여건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논거이다.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안전은 대한민국 어디에 있는 기본적인 서비스가 전달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중요하다. 그러나 소방직의 국가직화가 의미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보수는 국가에서 지급한다. 그러나 국가가 직접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소방안전교부세로 지방자치단체에 주면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집행한다. 소방안전교부세는 담배소비세를 인상하면서 2015년부터 담배에 부과되는 개별 소비세의 20%를 소방과 안전 분야에 사용하도록 한 재원이다. 2017년 기준으로 4,588억원이 지출되었다. 향후 2020년에는 45%까지 인상하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소방공무원의 보수를 중앙정부가 지원한다는 관점에서는 국가직이 된다.

둘째 인사권은 누가 가질 것인가? 소방청장이 전국 소방직 공무원의 인사권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지금과 같이 시도지사가 갖도록 하고 있다. 인사권이 시도지사에게 있는 경우 국가직 전환에 따라 전국적 지휘권을 확보한다는 취지는 약화된다. 흔히들 전국 소방이 협력하는 연대를 생각하지만, 기능으로 보면 여전히 지방자치단체 소속이다.

셋째 예산 배분권은 누가 가질 것인가? 중앙에서 소방안전교부세로 해서 총액을 교부해주면 그 범위에서 지역에서 정하게 된다. 물론 시도의 다른 재정 지출과 혼동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방특별회계로 운영하도록 할 것이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충분한 재원을 소방안전교부세를 통해 지원한다는 보장은 없다. 담배소비세에 일정 비율을 곱해서 지방에 교부하기 때문에 수요 금액과 지원 금액이 같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예산 편성권이 시도에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다른 행정 수요에 견제를 받을 것이다.

이렇듯 지금 소방의 국가직화는 사실 보수를 포함하여 모든 재원은 중앙에서 지원되고 기능, 인사권 등은 지방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체제로 논의되고 있다. 지금 현행의 교사가 그러한 모형이다. 교사 봉급과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원은 지방교육교부금으로 해서 중앙에서 지원된다. 그리고 교육특별회계를 통해 지방교육청에서 이를 집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교사의 신분은 지방교육청 소속이지만 국가직이라고 분류하고 있다. 소방도 그러한 모형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다. 다만 사람 중심으로 관리되는 교육과 달리 소방차, 각종 장비를 필요로 하는 소방도 그렇게 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보수와 장비 구입 관련 경비를 국가가 부담한다는 구조 이외에 인사, 기능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의미를 확인하고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 등을 면밀하게 정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직이라는 형식적인 용어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수단으로 그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인지는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꼼꼼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원희 한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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