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통업체 입점으로 인해 타격을 받을 지역 소상공인들을 위해 마련된 ‘상생협력(기금)’이 변질되면서 상인들 간 다툼이 일고 있다. 중부일보가 안양지역에서 벌어진 상생협력기금(상생자금) 횡령 의혹과 고소에 따른 수사 소식을 전한 이후 도내 전역에서 횡령 의혹이 빗발쳤다. 대형 유통업체가 상생협력을 체결하는 대상은 입점 거리 1㎞ 안의 전통시장 및 중소상인. 실제 협약에는 각 전통시장 상인회장이나 지역 소상공인연합회장이 나서는 구조다. 협약으로 탄생한 상생협력(서)은 대형 유통업체가 입점등록 시 지자체에 제출하는 ‘지역협력계획서’에 첨부되는 일종의 동의서 성격이 짙다. 때문에 상생협력 없이는 사실상 대형 유통업체가 진출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대형 유통업체 입점에 상인회장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횡령 의혹 역시 여기서 출발한다. 이 같은 구조와 지위를 악용, 대형 유통업체로부터 지원받은 거액의 일부를 상인회장이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

상생협력 절차도 허점을 드러낸다. 협력을 통해 결정된 지원항목, 지원내역, 사용처 등 협약의 모든 내용이 비공개다. 협약 문서도 만들지 않고, 구두로 합의만 하는 경우도 있다. 롯데·홈플러스·이마트 등 대형 유통3사와 체결하는, 전국 지역마다 존재하는 상생협력협의회뿐만 아니라 개별 대규모 점포와의 상생협력 역시 이 같은 불투명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자체 역시 상생협력에 대해 수수방관하는 모양새다. 지자체는 협약에 따른 상생협력서를 첨부한 지역협력계획서를 접수만 할 뿐, 상생협력과 관련된 세부사항은 공개하지 않는다. 사인 간 거래라는 까닭에서다. 억 단위의 돈이 ‘눈먼 돈’으로 전락하고, 상인회장들이 곶감 빼 먹듯 해도 딱히 감시 수단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내 소상공인들 사이에서 상생자금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는 것이다. 상생협력의 이해 당사자인 경기도 상인연합회와 소상공인연합회 내부에서도 자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충환 도 상인연합회 회장은 “상인회도 이제 공적조직으로서 매뉴얼과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면서 “각 상인회의 법인화를 통해 시스템을 갖춘다면 상생협력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상생협력기금을 비롯해 일절의 자금성 지원에 대해 ‘원칙적 반대’를 천명하며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자금성 협력에 대해서는 어느 지역(소상공인연합회)이든 예외 없이 징계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가 겪는 또 다른 단면을 들여다 보자.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3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년 전에 비해 7만 명 줄었다. 작년 12월 2만1천 명 줄어든 뒤 4개월 연속 감소세다. 감소폭도 지난 1월 4만9천 명, 2월 5만 명에 이어 매달 확대되는 추세다. 반면 고용원 없는 ‘나 홀로 사장’인 자영업자는 5만9천 명 증가했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상황이 어려워져 고용원 수를 줄이고, 결국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지난해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는 것에 대해 정부가 ‘고용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고 내놓은 해석에 대해서도 시각이 엇갈린다. 자영업에 처음 뛰어든 업주들은 고용원을 쓰는 경우가 많고, 지난해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증가도 구조조정을 당한 회사원이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풀이다. 외환위기 때처럼 말이다.

그뿐인가. 그동안 자영업자 수는 2002년 621만 명(전체 취업자의 27.9%) 최고치를 기록한 뒤 임금근로자 전환이 늘면서 점차 줄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자영업자 비중은 전체 취업자의 21%를 차지하며 선진국에 비해 과밀도와 경쟁이 심한 상황이다. 여기에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매장으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는 소비 구조 변화도 타격이 크다. 온라인쇼핑의 증가로 인해 중간 유통업체는 줄고 영세 자영업자는 온라인·오프라인 모두 여의치 않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기존 강자였던 백화점, 대형쇼핑점, 편의점 등의 매출은 늘지 않고, 영세 자영업자는 온라인 시장에 진입하려고 해도 고품질·저가격에 밀리면서 경쟁력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소상공인들을 둘러싼 환경은 어느 때보다 ‘상생’을 필요로 한다. 잇속만 차리다 자업자득이라는 비난을 사지 않기를 바란다.

 

이금미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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