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문학의 정의조차 제각각이다. 가장 흔한 말이 인문학은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것이라거나 우주의 질서를 알아내기 위한 학문이라는 따위이다. 막연하고도 황당한 말이다. 그러니 인문학은 재미없는 학문이라는 누명을 벗지 못한다. 정의부터가 흔들리는데 세세한 내용인들 온전히 들리겠는가 말이다.

개중 그럴 듯하게 들리는 말이 있다. 인문학은 질문하는 학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다. 질문의 방식이나 의미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그러니 좀 더 알아보자. 고전 중의 고전 ‘논어’를 보자. 논어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자왈(子曰)이다. 자왈이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는 뜻이다. 논어는 공자의 말씀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러나 논어를 제대로 읽으려면 자왈에 주목하기 전에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는 얘기는 곧 제자의 질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자로가 묻고 공자가 답하고, 안회가 묻고 공자가 답하고, 자공이 물으니 공자가 답한다. 자하가 물으니 공자가 답하고, 염구가 묻고 공자가 대답한다. 즉 논어는 질문에 관한 책이다.

서구로 넘어가 보자. 서구철학의 원류로 불리는 소크라테스를 살펴보자. 제자의 질문에 답했던 공자와 달리 소크라테스는 먼저 묻는다. 그리하여 질문을 받은 자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뇌하게 한다. 진리를 터득하는 것은 소크라테스 자신이 아니라 질문을 받은 당사자다. 그래서 산파술이다. 스스로 진리인양하지 않고 진리를 잉태하도록 돕는다는 말이다.

누가 먼저 질문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물음이 있고 그에 대한 답이 있을 때, 그게 바로 학문(學問)이다. 학문이란 묻고 또 묻기를 습(習)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 하나 던져 보자.

시민이란 무엇인가? 생뚱맞은 질문일 수 있겠다. 시민이란 자유로운 사람이다. 노예의 삶을 거부하는 자유인을 일컬어 시민이라 한다. 사회구성원이 노예와 시민으로 나뉘었던 그리스와 로마에 연원을 둔 말이다. 자유란 또 무슨 말인가. 자유란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엔 책임이 따른다. 따라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 바로 리버럴 아트(liberal arts), 즉 인문학이다.

인문학이란 자유인, 즉 시민에게 요구되는 덕성이다. 시민에겐 노예와 다른 품성이 요구된다. 사회적 가치로서의 푸블리카(Publika, 공공성)에 대한 이해가 곧 시민의 품성이다. 시민의 품성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art)이 바로 인문학이다. 자유의 기술, 즉 인문학은 생각하는 힘을 통해 세상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러한 생각의 힘과 비판의식을 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어야 한다. 표현하지 못하면 이웃과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자유로운 시민이 되기 위해선 말과 글을 정확하게 사용해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설득해야 한다. 수사학적 능력이다.

정리해 보자. 인문학이란 질문하는 것이다. 사회과학이 노하우(Know-how)을 알려주는 학문이라는 인문학은 노와이(Know-why)의 학문이다. 질문은 답을 얻기 위한 것이며 그 답을 통해 시민의 삶의 방식과 내용이 구현된다. 다시 인문학은 시민의 삶을 살기 위한 학문이다. 시민의 삶이란 노예의 삶과 달리 자유로운 삶이다. 자유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삶이다. 거기엔 기술이 필요하다.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한 기술, 곧 인문학(liberal arts)이다.

수원의 작은도서관 ‘책고집’에서 오는 5월부터 “시민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두 달에 걸쳐 인문강좌를 진행한다. 전술했듯이 시민이란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 자유롭기 위한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자유의 기술은 공공성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공공성의 자각을 통해 자기 자신은 물론 이웃과 세계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어야 한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비판적 생각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책고집 인문강좌 “시민이란 무엇인가?”는 인권과 생명, 언론, 노동 등의 주제를 다룬다. 온전한 시민으로서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최준영/ 작가, 거리의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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