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소품이나 과시용 등으로 매매, 시세 형성
헌혈왕들, 홍보만 치중하는 적십자사 안일한 대응 질타

대한적십자사가 최소 30회 이상 헌헐자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만든 헌혈 유공장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21일 한 포털 사이트에서 '헌혈 유공장 판매'라는 단어로 최근 1년간 결과를 검색하면 30건에 가까운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다.

게시물을 클릭해 시세를 보면 1만∼5만원까지 다양하다. 헌혈 횟수가 많고 미개봉 상태면 값도 올라간다.

이달 16일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금장'과 '은장'을 함께 판다는 글을 보면 작성자 A씨는 "전시하지 않아서 상태 깨끗합니다. 5만원 택배 거래 시 착불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이런 형태 게시물이 올라오면 거의 곧바로 거래가 성사된다. 일부는 댓글 등으로 가격을 흥정하기도 한다.

판매자들은 본인들이 헌혈한 뒤 받은 것이라고 헌혈 유공장 인증 사진을 올리며 전시용으로 매입을 추천한다.

구매자 대부분은 인테리어 소품이나 과시용으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헌혈 유공장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수집가도 거래에 한몫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적십자사가 운영비로 제작하는 헌혈 유공장은 헌혈 횟수에 따라 은장(30회), 금장(50회), 명예장(100회), 명예대장(200회), 최고명예대장(300회) 등으로 나뉜다.

그나마 다행으로 헌혈을 하지 않은 사람이 헌혈 유공장만 제시한다고 해서 그에 따른 혜택을 받을 수는 없다.

대한적십자사가 헌혈자 신분과 헌혈 횟수 등을 실명으로 전산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혈왕들은 헌혈 유공장 매매가 빈번해진 이유로 헌혈 참여 홍보에만 치중하는 대한적십자사의 태도와 소홀한 헌혈자 예우 등을 꼽는다.

사진=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 캡처
사진=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 캡처

부산에서 40년간 300번 넘게 헌혈한 이모(59) 씨는 "1990년대만 해도 금장 대상이 되면 왕복 항공권을 받고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해 유공장을 받았다"며 "지금은 헌혈자가 많아졌다는 이유로 유공장 수여식조차 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적십자사에 개선을 요구했으나 달라지는 게 없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헌혈 유공장을 고이 간직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헌혈 유공장 매매 실태를 알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

헌혈 훈장 수여와 관련한 규정이나 지침에 매매 행위에 대한 내용이 없어 개입할 수는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대한적십자사 부산혈액원 관계자는 "기존 헌혈 유공장을 보완해 새로 제작한 헌혈 유공장을 5월 중순부터 지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명예의 전당'을 보면 올해 4월 전국 100회 이상 헌혈자 수는 3천541명이다. 연합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