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잘알(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생각했다. 법은 평등하지만 정작 법을 이용하는 건 평등하지 않다고. 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했다. 화가 나도 정작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법을 몰라 화가 난 사람들을 위해 법원을 박차고 나왔다. 온라인 집단분쟁 플랫폼 ‘화난 사람들’의 대표 최초롱 변호사 이야기다.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어렵게 들어간 법원이었지만, 최 대표에게는 하고 싶은 것이 더 중요했다.
비법률가들에겐 법은 그저 ‘그들만의 이야기’다. 용어도 어렵고 전문가들의 영역으로만 느껴진다.
하지만 법은 일상에도 적용되고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생활 수단이다.
그럼에도 법을 몰라 피해를 입고 분통을 터트린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불을 뿜고 있는 현재, 최 대표는 그들에게 ‘화난 사람들’에서 함께 분노해 보자고 손짓한다.
‘법알못’이 법잘알이 되는 그날까지 함께 화를 내겠다는 최초롱 대표를 만나봤다.

―‘법잘알’이신가요.
“‘법알못(법을 알지 못 하는 사람)’을 위한 법률포털 ‘화난 사람들’ 대표 최초롱입니다. 변호사이기도 하고요. 나름 법잘알이죠. ‘화난 사람들’은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문제를 변호사들과 함께 해결하고 풀어나가는 온라인 플랫폼입니다. 어떤 사건이나 억울한 일을 당한 의뢰인들과 변호사를 중개해주는 역할을 하죠. 예를 들면 어떤 의약품을 사용하다가 부작용 피해를 본 의뢰인이 있어요. 하지만 이걸 어떻게 따지고 보상받는지 모르죠. 당황스럽기도 하고요. 그럴 때 화난 사람들에 의뢰를 하시면 저희가 많은 피해자를 모으고, 변호인 측과도 협의해서 함께 소송을 진행하는 거예요. 그래서 ‘화난 사람들’을 집단분쟁 플랫폼이라고도 하죠. 물론, 집단분쟁뿐만 아니라 고소·고발, 사회문제 캠페인 등 다양한 법률 활동을 지원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이슈 확인은 필수에요. 아침 눈 뜨고부터 잠들기 전까지 여러 이슈를 살펴봐요. 우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뉴스를 봐요. 그 다음에는 공정거래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방송통신위원회 등 사이트에 접속해 주요 현안을 확인하죠. 전국 주요판결도 훑으면서 오늘은 어떤 화나는 일이 있었는지 들여다봐요. 출근해서는 직원들과 함께 ‘화난 사람들’의 운영 방향에 대해 회의하고, 밀린 업무도 하고요. 또 사이트에 업로드 할 콘텐츠도 제작하죠.”

―‘화난 사람들’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법을 모르는 사람도 법을 잘 이용하게 하고 싶었어요. 연수원을 졸업하고 서울 고등법원에서 2년간 재판연구원으로 일했어요. 법원에서 근무하며 법을 잘 몰라 피해를 입는 경우를 여럿 봐왔죠. 분명 법은 평등해요. 하지만 법을 이용하는 건 평등하지 않더라고요. 법을 잘 알고,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생기기 전에 예방조치를 잘 해요. 문제가 생기더라도 초기에 진화를 잘 하죠. 혹여나 문제가 커지더라도 여러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서 결국은 해결해요. 하지만 법을 모르는 이들은 작은 일도 쉽게 해결하지 못하고 불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많이들 화가 나 계셨어요. 아, 이름을 화난 사람들로 해야겠구나 싶었죠. 계기도 있어요. 변호사이자 대학 선배가 한 숙박예약 어플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맡았어요. 피해자가 워낙 많고 서류 정리도 복잡하다 보니까 힘들어 하더라고요. 많은 집단소송이 갖는 특징인데요. 가령, 의뢰인들이 자료를 보내주는데 이메일이나 팩스로 여러 곳으로 보내시다 보니 데이터가 섞이는 경우가 많아요. 또 착수금을 무통장 입금으로 하는데 입금자명에 이름 대신 ‘힘내세요’같은 문구로 적어놔서 누군지 확인도 어렵고요. 빅데이터와 자동화시대임에도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이런 작업이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져요. 선배와 고민을 나누다 이걸 자동화해주는 모델을 만들면 괜찮겠다 싶었죠. 의뢰인들도 쉽게 사건을 접수할 수 있고, 저희도 업무가 수월해지고요.”

―그럼에도 어렵게 들어간 법원에서 나오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게 있으니 괜찮았어요. 대학교 시절에도 자유롭게 대학생활을 즐겼어요. 노는 걸 좋아하고 자체 공강도 가끔 했죠. 법대를 가긴 했지만 사시란 게 막연했죠. 주위에서는 사시 공부 중이거나 이미 법조인이 된 동창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평생 법 공부만 할 수 있을까 싶었죠. 그래서 잠시 방황했어요. 하지만 일단 사시를 합격하고 법조계에 들어서면 지금보다 더 넓은 길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생각을 하니 사시가 크게 부담되지 않더라고요. 저는 사시생들이 모인다는 신림동도 안 가봤어요. 그냥 카페에서 공부했죠. 다만, 완벽한 아침형 인간을 넘어 새벽형 인간이었어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점심 때까지 공부하다가, 오후에는 카페 2~3곳을 돌아다니면서 공부했어요. 그리고 밤 9시에는 잠들었죠. 그리고 결국 시험에 합격했어요. 저희 부모님은 제가 왜 사시 공부를 했는지 아셨기 때문에, 법원에서 나가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하셨대요. 말리지 않고 오히려 응원해주셨죠. 저는 어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사람이에요. 대학 동창들도 제가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할 때는 신기해 했는데요. 지금은 제 인터뷰 기사를 보내주면서 잘 보고 있다고 해주기도 해요.”

―기억에 남는 재판이 있나요.
“너무나 유명한 사건인데요. 한 대학교에서 교수가 수년 동안 조교들을 폭행하고 인분까지 먹인 사건이 있었어요. 제가 법원에서 근무할 당시 담당했던 사건이기도 하고요. 내용 자체가 충격적이죠. 기억에 남는 건 피해자들과 전혀 관련 없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재판부에 합당한 처벌을 해달라고 탄원서를 보낸 거예요. 재판은 법과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하죠. 하지만 국민정서나 사회적 인식도 재판관에게는 하나의 판단 기준이 되거든요. 거기서 저는 여러 생각을 했어요. 처벌이 필요하고 해결이 중요한 문제라면 많은 대중도 공감하고 함께 분노한다는 사실을요. 자연스럽게 집단에서 분노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사업도 처음이고, IT업계도 처음인데 어떻게 적응하셨나요.
“우스갯소리로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쉽게 도전하지 못했을 거라고 해요. 처음이기도 하지만 스타트업이라는 것 자체가 계속 뛰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더라고요. 지금도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고 있어요. ‘화난 사람들’을 운영한 지 이제 막 1년이 됐어요. 지금까지 저와 IT개발자, 디자이너 이렇게 3명이 열심히 고민하고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IT는 생소했지만, 남편이 IT업계에 근무한 경험이 있어서 여러 지인들을 만나면서 궁금한 점도 물어보고 자문도 구했죠. 본격적인 투자도 받아야 더 여러 분야에 도전할 수 있어서 스타트업 지원센터도 방문하고 활동 폭을 넓히고 있어요.”

―변호사이자 스타트업 대표인데요. 장단점이 있을까요.
“우선 제가 하는 일에 있어서 전문성이 있어요. ‘화난 사람들’은 법률 포털이고, 규율하는 법에 근거합니다. 제가 비법조인 출신이었으면 일을 할 때마다 관련법을 찾아보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사시공부를 하고 재판연구원으로 일한 덕분에 그런 데 있어선 훨씬 수월하죠. 다만, 제가 아직까지는 다른 스타트업 대표들보다 보수적인 것 같아요. 판사는 객관적이고 분명한 근거에 의해서 판단해야 돼요. 저도 법원에서 일을 시작했고 원리와 원칙을 중시하다 보니 어딘가 경직된 부분이 있었나 봐요. 다른 대표 분들은 좀 다르시더라고요. 불확실한 면이 있을 때도 과감하게 치고 나가는 성향이 있어요. 특히나 스타트업은 사업 확장성이 넓고 역동적인 생태계이다 보니 그런 면이 확실히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법원에서 일하던 습성을 조금씩 바꾸고, 과감함을 배우려고 노력 중입니다.”

―최근 법조인들이 온라인 상에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 같아요. 유튜브도 있고요.
“저도 어려 플랫폼을 자주 이용하려고 해요. ‘화난 사람들’도 여러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자 ‘B급 감성’을 내세우고 있고요. 저 외에도 젊은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리걸테크(legal tech·법률과 IT기술을 결합한 법률 서비스)에 많이들 관심을 갖고 계시죠. 물론 유튜브는 이제는 보편화된 축에 속해요. 저도 업무차 많은 변호사를 만나는데 유튜브를 많이들 하시더라고요. 변호사가 직접 법률 상식을 전달하기도 하고, 브이로그(자신의 일상을 촬영한 영상 콘텐츠)를 촬영하기도 하죠. 저도 유튜브에서 여러 시도를 해보려고 해요. 어떤 상업적인 목적보다는 법이라는 높은 장벽을 허물고, 대중들에게 법을 친근하게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화난 사람들’을 ‘법알못’을 위한 법률포털이라고 소개해 드렸는데요. 법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도 쉽고 편하게 법을 이용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어요. 법을 몰라 화가 나신 분들의 화를 풀어드리는 거죠. 또 단순히 의뢰인과 변호사를 중개해주는 역할에 그치고 싶지 않아요. 누구나 편하게 들어와서 법률 상식도 얻고, 하소연도 하고, 한탄도 늘어놓는 그런 플랫폼을 구축하고 싶어요. ‘아, 이거는 화난 사람들에다가 글 올려서 문제 제기를 해야겠어’라고 하는 날이 온다면 제 목표를 이루는 거 아닐까요. 개인으로서의 목표도 있어요. 저는 항상 재밌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재밌게 살아온 것 같아요. 물론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고민할 것도 많고 어려운 일도 있지만, 순간순간에서 재미를 느끼려고 해요. 제가 느끼는 재미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었으면 좋겠어요.”
취재=정성욱기자
사진=노민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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