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서북부에 위치한 파주시.수도권이라고는 하지만 한국 전쟁 이후 의정부시,양주시와 함께 경기도 최전방의 군사도시로 군사시설보호법,수도권정비계획법 등 중첩규제를 받고 있는 탓에 발전이 더딘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인재 전 파주시장은 시(市)의 살림살이를 맡았다. 그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시장으로 근무하면서 파주를 역동적인 도시로 성장시키는 밑거름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임기간 동안 2조4천억 원의 외자를 유치하기도 했으며, 파주시의 빚 1천여억 원을 갚아 예산대비 채무비율을 7.3%로 낮췄다. 현안 사업에 필요한 예산은 지방채 발행 없이 국비와 도비를 확보해 추진하는 등 취임 이후 파주시가 확보한 국·도비의 총액은 1조55억 원으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 불리한 법 규정으로 GTX 계획노선에서 파주가 제외되자 법 개정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교통연구원과 용역 진행,국회의원 주관 정책세미나를 열고 시민 궐기대회를 여는 등 열악한 교통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섰다. 그는 젊은 파주와 일자리 넘치는 파주를 만들기 위해 호탕한 성격만큼 앞뒤를 보지않고 기업 유치전에도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이인재 전 시장은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주관한 전국 기초지자체장 공약이행 평가에서도 4회 연속 최우수 지자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치계를 떠났음에도 여전히 파주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는 이 전 시장을 만나, 최근 현안과 근황에 대해 들어봤다.

-강원도 출신으로 전남에서 성장, 서울에서 사춘기와 대학교를 다녔는데요. 경기도와 파주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나요.
“1960년 아버님이 군 법무관으로 강원도 인제군에 있었던 육군 3군단에 복무할 때 태어나 아버지 직장을 따라 서울, 광주, 목포, 인천 찍고 다시 서울에 올라와 중·고교, 대학을 나왔습니다. 제가 이름이 ‘인재’인 이유는 ‘재’자는 항렬이고 태어난 ‘인제군’의 ‘기린 린’자를 썼습니다. 군인이신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다니다보니, 당시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만 네 곳을 다녀 친구들이 없고 사투리 때문에 놀림을 받아 맘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경기도와의 인연은 결혼 후 일산 신도시에 입주한 1992년부터 고양시, 수원시, 파주시에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28년이 됐네요. 1982년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면서 경기도와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통일원과 경기도, 내무부(현재 행정안전부) 등에서 근무를 했었는데요. 경기도에서는 계장, 과장, 구청장, 국장, 부시장, 원장, 민선시장 등 총 30여 년을 근무했어요. 임사빈 도지사부터 김문수 도지사까지 7명의 도지사를 모셨네요. 파주는 2001년 11월 임명직 부시장으로 근무를 하면서 인연이 돼 2010년 지방선거에서 파주시장으로 당선돼 일하다, 시장에서 물러나고 지금까지 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실제 고향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 파주는 저의 진정한 고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의 꿈과 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공직은 피하는 것도 어리석고 쫓는 것도 어리석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생을 전문 공무원으로 일하다 선거에 나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요. 제가 출마할 당시 민주당은 야당이었고 접경지역인 파주는 민주당으로 출마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습니다. 운이 좋았던지 아니면 행정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좋게 봐주셨는지 민선시장으로 당선됐습니다. 파주와의 인연을 맺기 전 경기도에서 최장수 문화관광국장으로 있으면서 세계도자기엑스포를 입안해 이천, 여주, 광주에 건물을 짓고 600만여 명이라는 입장객을 끌어 모았습니다. 또 실학박물관, 도립미술관, 도립 국악당 등을 만들고 화성, 남한산성 복원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죠. 경기북부에는 고양 일산 호수공원에 있는 ‘노래하는 분수대’를 스페인 바르셀로나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아 건설했고 황영조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 만들어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훈장도 받았습니다. 정치에 뛰어든 것도 공직자로서 근무하면서 느꼈던 현실을 ‘아름다운 이상(理想)’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 싶은 생각에서 였습니다. 제가 시장에 취임할 때만 해도 파주는 대부분 군사시설보호구역인 낙후된 도시였습니다. 접경지역 시장군수회의 의장을 맡아 ‘접경지역 특별법’을 인근 시장·군수들과 함께 만들어 파주를 통일의 중심도시이자 외자유치 1등 도시로 만든 것은 지금도 자부심을 느낍니다.”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인천 송도 국제도시에 있는 한국 뉴욕주립대에서 석좌교수를 맡고 있고 건국대 행정대학원에서 공공정책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젊은 분들과 대화도 하고 그들의 생각을 공유하다 보니 젊어지는 것 같아요. 또 신문에 사설과 칼럼 등을 쓰고 있습니다. 학교 강의와 기고 외에도 최근 2년 전부터 새로운 취미가 생겼는데 바로 그림 그리기입니다. 지금까지 280여 점을 그렸는데 일러스트 펜과 붓으로 그립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친구들 얼굴을 심심풀이로 그려보다가 시작하게 됐습니다. 딸이 하도 많이 그린다고 ‘파카소(파주의 피카소)’라는 별명을 지어줬는데요. 잘 그려서가 아니라 덮어놓고 많이 그린다는 놀림 말입니다. 칼럼은 현 정부비판이 대부분인데, 저를 걱정하는 지인들이 ‘같은 당 시장 출신이 너무한 게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뻔한 소리’나 ‘둘 다 옳다’ 식의 글은 안 쓴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글이나 문학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잘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도 눈을 감거나 잘했다고 하는 것은 공직을 평생했던 사람으로서 용납되지 않습니다. 곡학아세(曲學阿世)는 안되잖아요. 하지만 제가 쓴 정부비판 칼럼과 관련해 어떤 곳에서도 뭐라는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언론자유가 보장된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동생과 함께 최근 방송을 출연하셨는데 어떠셨나요.
“친동생인 이경제 한의사가 고정출연하고 있는 한 예능 프로그램의 ‘형제특집’ 편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종편의 시사프로 생방송에 출연은 해 봤지만 토크쇼는 처음이라 약간 걱정도 됐는데 하고 싶은 말을 막 하니 오히려 좋았습니다. 방송 후 실시간 검색에도 뜨고 보니 우쭐한 마음도 생겼습니다만, 거의 다섯 시간을 녹화한다는 게 많이 힘들더라구요. 허리도 아프고 남이 말할 때 졸리기도 해서 혼났습니다. ‘예능은 편집이다’라는 말이 실감나고 방송에 근무하시는 분들의 순발력과 센스에 감탄했습니다. 또 출연 제의가 온다면 출연해 보고 싶습니다.”

-파주는 어떤 곳이며, 당시 단체장으로서 잘한 점과 아쉬운 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파주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파죽지세(破竹之勢)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최근에 파주처럼 빠르게 발전한 도시는 없었기 때문이죠. 파주시장으로 재임하면서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던 것은 바로 외자유치와 부채경감이였습니다. 재임 4년 동안 총 2조4천억 원의 외자를 유치했어요. 이는 당시 경기도 투자유치 총액의 85%를 차지한 수치였습니다. 그리고 빚을 갚고 국도비의 유치로 재정 건전성을 확보했습니다. 사실 빚 갚는 건 민선시장으로서 인기 없는 일이지만 그대로 놔두기엔 너무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제가 취임할 때만 해도 파주시는 예산대비 채무비율이 17.5%로 경기도에서 4번째로 빚이 많은 지자체였습니다. 시정 방향을 재정 건전성 확보에 두고 4년간 한 푼의 지방채도 발행하지 않고 빚을 갚았죠. 덕분에 총 943억 원의 빚을 갚아 예산대비 채무비율도 7.3%로 낮췄습니다. 현안사업에 필요한 예산은 지방채 발행 없이 국비와 도비를 확보해 추진했어요. 취임 이후 파주시에서 확보한 국·도비 총액은 1조55억 원으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재임기간 앞만 보고 뛰다보니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주관한 전국 기초지자체장 공약이행 평가에서도 4회 연속 최우수 지자체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저는 공식자리에서 자주 ‘파주에는 당(?)이 없다’고 말했는데, 일부에선 이를 놓고 소속 정당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시정에 있어서는 당적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 시민이기 때문에 여야 구분 없는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역발전을 위한 각자의 자세와 노력만이 중요할 뿐이며, 지방까지 중앙정치의 논리를 대입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지자체장은 소신을 갖고 오로지 지역 민생 해결만을 위해 정책을 추진하면 될 뿐이지, 그가 어느 정당 소속인지는 지역주민 생활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봅니다. 시장으로 재임 시절 4년의 시정 운영에 대한 평가는 시민들께서 평가해주실 것입니다.”

-최근에는 파주를 포함한 접경지역 6개 지역 등 모두 8개 지역이 정부에 수정법 규제 합리화를 위해 수도권 제외를 건의했습니다. 그간 경험으로 봤을 때 수도권에서 제외가 된다면 경기북부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경기도가 최근 파주를 포함한 접경지역 6곳과 농촌 지역 2곳의 시·군을 수도권에서 제외해달라는 건의안을 국토교통부에 제출했었죠. 경기북부지역은 수도권정비계획법 뿐만 아니라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라든지, 상수원 보호구역, 그린벨트 등 3중, 4중으로 규제를 받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수도권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훨씬 더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었음에도 수도권 규제에 묶여 성장 동력이 떨어졌습니다. 수도권 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하기는 커녕 해외로 다 이전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들도 노크만 하다 결국 포기하고 중국이나 동남아 등으로 떠난 사례들도 즐비합니다. 정부는 이번을 계기로 수도권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려는 지자체들의 속내를 제대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발표한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편 방안’에서 이들 경기동북부 8개 시·군을 비수도권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정부는 이를 규제 샌드박스에 포함 시켜 지방자치 시대에 맞게 지자체에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이들 경기동북부 8개 지역이 수도권에서 제외된다면 정책효과는 곧바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선 공장의 신·증설 제한 등이 완화되면서 낙후지역에 대한 투자가 다시 살아날 것이고, 활용도가 낮거나 불합리한 농업진흥지역도 과감하게 해제 또는 완화되면서 빠르게 민간 투자를 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업 투자수요가 있어도 실제로 투자하지 못해 발전 혜택을 누리지 못한 지역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규제는 개혁해 보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본질은 외면한 채 무조건 수도권을 옥죄는 것은 문제의 올바른 해결방법이 아닙니다. 정부도 비수도권의 눈치만 볼 게 아니라 비수도권에서 가능한 컨텐츠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형태를 갖추는 일이 시급합니다.”

-4월에 도가 추진하는 8개 신규 사업의 예산 분담비율 조정을 논의했습니다. 전 지자체장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경기도는 재원 규모가 가장 큰 고교 무상급식의 경우 경기도교육청이 부담하는 50%를 뺀 나머지 절반을 시·군이 35%(491억 원), 도는 15%(211억 원)를 부담하겠단 것인데요. 또 어린이집 운영비 지원은 시·군이 70%(156억 원), 도는 30%(67억 원)를 분담하겠다는 것이지요. 아직까지는 경기도시장·군수협의회가 건의한 5대5의 ‘도-시군 재정분담 비율 건의안’을 도가 수용할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당초 5월 추경 전에 시·군과 함께 분담비율 협의를 마무리하기로 했었지만, 도가 내부 검토만으로 일방적 수용불가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시·군과 도가 극명하게 입장이 갈리면서 당분간은 갈등의 골 또한 깊어지리라 봅니다. 도에서 재정적 한계를 이유로 당초 시·군과 사전 협의키로 한 것을 무시하고 일반적으로 7대 3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들 지자체들이 도에 반감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경기도가 7대3 원칙의 고수뿐 아니라, 일선 기초자치단체들을 단순한 산하기관 정도로만 인식하고 괄시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도가 먼저 제안한 사업들은 도가 균형감 있게 재원을 부담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시·군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죠. 도에서 먼저 제안하는 사업인데, 생색은 도에서 내고 부담은 일선 시·군에게 지우겠다는 식이죠. 이는 엄연히 지방자치권을 거꾸로 억압하는 것입니다. 시·군에 엄청난 부담을 지우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고, 분담비율은 균형감 있게 다시 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경기도는 서울과는 혐오시설, 강원·충청과는 경기도 수도권 해체 반대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한반도 허리만 끊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역 간에도 여러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여러 방면으로 갈라지고 쪼개졌기 때문입니다. 기피시설 또는 혐오시설 문제를 놓고 서울과 경기도간 갈등이 대표적인데요. 특히 고양시에 위치한 서울시 소유 기피시설인 벽제승화원, 난지물재생센터,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때문에 수년 간 주민 갈등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서울시 구로 차량기지를 광명시 노온사동으로 이전하려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광명시에선 차량기지 지하화 등의 요구를 무시한 일방적 진행이라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이들 현안들의 공통점은 서울시민이 이용하는 시설에 따른 피해를 경기도 주민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는 것이죠. 이뿐 만이 아닙니다. 경기도에서 일부 지자체들을 수도권에서 해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강원과 충청지역에선 ‘비수도권을 배려하겠다는 지역 균형발전 정책을 역행하는 처사’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 간 갈등 해소를 위해선 해당 지자체 뿐만아니라 지역주민과 관련 분야 전문가 등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공동협의체’ 구성이 우선돼야 할 것입니다. 현안에 대한 현재 상황과 문제점 등을 모두 협상 테이블에 올려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양자 모두 상생할 수 있는 해결책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협의체 운영을 통해 ‘상생발전을 위한 공동합의문’을 체결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겁니다. 타협점 없는 갑론을박만 할 게 아니라 창조적 대안을 발굴하고 이를 정책화해 나간다면 함께 상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합의체는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부차원의 특단대책이 필요합니다. 대립하는 두 지역의 눈치만 보다가는 허울만 남습니다. 이분법보다는 해당 지역의 낙후성과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정책이 마련되야 합니다.”

-일자리 확충을 위해 국내 기업은 물론, 일본 등 해외기업 유치도 노력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 문제로 청년실업이 꼽히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최근 청년실업을 바라보는 정부 관계자들의 엉뚱한 발언으로 우리 젊은이들의 염장을 지르기도 했었는데요. 지난 1월 말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고만 말하지 말고 아세안 국가를 가보면 해피 조선을 느낄 것’이라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은 과거 정권에서도 있었죠.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다 어디 갔느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고 말해 청년 일자리 정책에 대한 무능과 무지를 보여줬습니다.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빚을 지고, 졸업 후에는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최근 ‘청년추가고용장려금’과 ‘청년내일채움공제’로 약 15개월간 32만 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었죠. 하지만 정작 청년 체감실업률이 역대 최악이라는 핵심통계는 빼놓았습니다. 청년 실업자에 잠재 구직자 등을 포함하는 청년층 확장실업률은 지난달 25.1%로 1년 전보다 오히려 1.1%p 늘었습니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꿈을 잃어가고 있다고들 말합니다. 미래에는 더 나아질 것이란 뚜렷한 희망도 없죠. 이젠 정부가 나서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갖고 취업 또는 창업전선에 뛰어들게 해줘야 합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을 줄을 세워놓고 푼돈 나눠주는 식의 정책으론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습니다. 결국 좋은 일자리입니다. 지금처럼 반기업적인 정책들은 현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이 될 것입니다. 맹자는 ‘무항산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고 했죠. 일정한 수입이나 직업이 없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뜻이잖아요. 정부에서 일자리를 만든다는 건 한마디로 난센스입니다.”

-중부일보 오피니언 필진으로 4년간 도민들과 소통을 하셨는데요. 정치는 물론, 국제 관계, 인문학, 역사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주셨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글로 도민들과 만나실 건가요.
“잠깐 남는 시간마다 주로 책과 신문을 읽고 있습니다. 수십 년 전부터 책과 신문을 읽다가도 가슴 속에 새길 만한 글귀나 좋은 말들은 ‘메모 노트’에 그대로 옮겨 적어놓고 했습니다. 그렇게 적은 메모 노트가 지금은 수십 권에 달할 정도로 늘어났죠. 최근 들어 중부일보 뿐 아니라 여러 언론사에 정기적으로 기고를 하고 있는데요. 글을 쓸 때마다 소재나 아이템들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이 노트들을 펼쳐보곤 합니다. 저에게는 이 메모 노트가 보물창고입니다. 또 파주시장에 재임했을 당시에는 전국 언론에 보도됐던 약 5년간의 칼럼들을 선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등 카테고리별로 나눠 ‘칼럼으로 보는 세상만사’라는 책을 엮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이 책을 들춰보며 글쓰기 소재를 찾곤 합니다. 그리고 저는 외부 필자이기 때문에 전문성은 다소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글로 바꾸는 능력은 아직도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매일 근육을 키우듯 글 쓰는 훈련을 합니다. ‘설교가 20분이 넘으면 죄인도 구원받기를 포기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중언부언하는 글이나 쓴 사람 자신도 모를 것 같은 어려운 글을 보면 화가 납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시를 쓴 다음 이웃집 할머니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도대체 무슨 소리야, 짜증나게….’라고 말하면 즉시 고쳤다고 해요. 쉽게 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거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 해주신다면.
“주위에서는 정치를 다시 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선거를 치르다 보면 본의 아니게 거짓말도 하게 되고 책임지지 못할 말도 하게 됩니다. 사실 저와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요. 저의 인생에 가장 보람있었던 시기는 남들이 못했던 일들을 나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성취했던 시기였습니다. 규제를 풀어 주민들을 기쁘게 하고 창조해 새로운 지평을 여는 그런 일들 말이죠. 저는 많은 공직자들을 보았습니다. ‘누가 와서 해도 될 일을 그 사람이 하니 안 되고 누가 와도 안 될 일이 그 사람이 하니 되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국민들에게 과연 무슨 득이 되고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편안할까라고 생각하며 일하는 공직자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저 하루하루 시간만 가고 나와 내 가족만 편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다른 일을 하면 될 텐데 요즘은 공무원이 대세라 그저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안정된 직장인’으로 전락됐습니다. 대부분 국어사전에 나오는 연애(戀愛)의 뜻은 ‘남녀사이의 그리워하는 애정’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독특한 뜻풀이가 있습니다. 연애라는 ‘특정한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둘만이 함께 있고 싶으며 가능하다면 합체(合體)하고 싶은 생각을 갖지만 평소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 마음이 괴로운(또는 가끔 이루어져 환희하는)상태’라고 말이죠. 어떤 판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솔직한 태도가 요구됩니다. 그래야 한층 높은 단계로 진입할 수 있죠. 일본 소프트 뱅크 손정의 회장은 자꾸 주위에서 자신의 대머리에 대해 말하자 ‘머리카락이 후퇴를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전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멋지게 답변했다고 그래요. 같은 사안을 가지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죠. 저의 계획은 제가 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준비를 하다 보면 기회가 오겠죠. 감당 못 할 그릇을 가지고 물을 담겠다면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취재=김동성기자/ 사진=김영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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