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점잖고 자상한 사람인데 술만 취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요.”

알코올 중독으로 상담을 받는 보호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때론 술만 마시지 않으면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사람이라며 모든 원인을 술 탓으로 여기거나 술 문제를 감싸고 두둔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참고 견디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고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병원을 찾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적당량의 술은 긴장을 풀고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어 말과 행동이 격양된다. 그래서 술이 뇌를 흥분시키는 물질로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알코올은 중추신경억제제로 뇌의 기능을 억제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술을 마시면 알코올은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전두엽 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킨다. 또한 뇌의 기억중추에도 영향을 미쳐 필름이 끊기는 블랙아웃(Black-out) 현상도 나타난다. 술에 취하면 맨 정신에는 절대 하지 않을 말을 내뱉거나 행동을 저지르고도 기억이 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통의 경우 이렇게 뇌 기능이 마비되어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곧 원래 상태로 회복된다. 하지만 ‘술 취하면 그럴 수 있지’라며 가볍게 여기고 음주를 지속하다 보면 문제는 점점 심각해진다. 지속적인 과음과 폭음은 뇌 기능을 망가뜨리고 구조적 변화까지 일으키기 때문이다.

대개 술주사는 뇌의 전두엽 기능이 망가져서 생긴다. 처음에는 술만 안 마시면 좋던 사람도 나중에는 ‘술 때문에 완전히 사람이 변했다’는 말을 들을 만큼 성향과 성격도 바뀐다. 술을 오래, 많이 마신 사람일수록 예민하고 감정 조절이나 충동 조절 능력이 떨어져 쉽게 화를 내거나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다. 술로 인해 변화된 성격이 굳어지면 술을 끊거나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도 신경질적이고 난폭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만일 술주사가 반복된다면 단순한 술버릇이 아니라 뇌의 전두엽이 손상됐다는 의미라는 걸 알아야 한다. 단순히 술버릇이라 생각하는 증상도 의학적으로 보면 심각한 알코올 질환의 증상일 수 있다. ‘술버릇을 고쳐야 한다’ ‘술을 끊어야 한다’는 주위의 충고에도 술을 끊지 못한다면 이미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알코올 전문병원이나 지역 내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통해 치료적 도움을 받길 바란다.

허성태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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