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유형문화재 제1호, 1624년 장대 4곳서 1686년 1곳 추가
산성 서쪽 주봉인 청량산 정상에 위치… 당초 단층 축조, 정조때 2층 누각 설치

1624년 조선시대에 지어진 ‘수어장대(守禦將臺)’는 전쟁이나 군사훈련 때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사들을 지휘하기 위해 자리하는 장소를 말한다. 성곽이나 산성에서는 넓은 대지가 마련돼 군사훈련에 편리한 장소이거나, 지형이 높아 주변 관망에 편리한 장소에 높다랗게 장대를 조성하고 건물을 지어 지휘소로 삼았다. 성곽의 규모가 클 경우 여러 곳에 장대를 마련하기도 했는데, 1711년(숙종 37년)에 축성한 한양의 북한산성에는 장대 세 곳을 두었고, 1796년(정조 20년)에 축성한 수원 화성에는 성곽의 동·서양 쪽 두곳에 장대를 세웠다.

남한산성에는 1624년(인조 2년) 축성할 때에 동·서·남·북에 4개 장대를 두었고, 1686년(숙종 12년) 봉암성을 축성할 때 외동장대(外東將臺)를 설치해 총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수어장대는 이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장대로 산성 내 서쪽 주봉인 청량산(해발 482m)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하부 구조는 자연석을 허튼층으로 쌓은 낮은 축대 위에 한 단 높여 다듬은 돌로 기단을 마련하고, 맨 바깥 둘레에는 8모뿔대 주춧돌을 세우고 안두리기둥 밑에는 그보다 낮은 반구형(半球形)의 주춧돌을 받쳤다.

기둥은 모두 민흘림 둥근 기둥이고, 1층은 초익공, 2층은 2익공으로 되어 있다. 가구(架構)는 5량가(五樑架)로서 고주(高柱) 위에 대들보를 건너지르고 그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마루보를 받쳤다. 지붕마루는 모두 양성바름을 하였고 기와골 끝에는 막새를 사용했다.

창호(窓戶)는 위층에만 있으며 매칸마다 2짝 판문(板門)을 달았다.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아래층 내진의 북동쪽 칸에 설치되어 있으며 단청은 모로단청이다.

당초에는 단층 누각으로 축조하고 서장대(西將臺)라 불렀는데, 이후 1751년(정조 27년)에 유수(留守) 이기진(1687년~1755년)이 왕명을 받아 2층 누각으로 다시 짓고, 수어장대라는 편액(扁額)을 내걸었다. 2층 내부에는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이 달려 있는데,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해 북벌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지은 것이다. 현재 무망루 편액은 수어장대 오른편에 보호각을 지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보관하고 있다.

수어장대는 1972년 5월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됐으며 크기는 1층 면적 105.08㎡, 2층 면적 43.29㎡이다.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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