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이 아닌 농인(聾人)으로 표현해 주세요. 한문도 꼭 병기해 주시고요.”

고광채(38) 위트라이프 대표는 인터뷰에 앞서 가장 먼저 농인으로 표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장애’라는 단어에 담긴 선입견과 부정적인 의미 때문이다.

그는 농인은 단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일 뿐이고, 듣지 못하거나 보지 못하는 것은 단지 개개인이 갖는 다른 특성, 차이 정도라는 것을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연 매출 20억 원 수준의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지만 유튜브채널 수라디오의 BJ이기도 하다.

유튜브 채널은 농인들 간 교류뿐만 아니라 농인에 대해 청인(聽人)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었다.

콘텐츠의 내용은 진지한 것보다, 보통은 고 대표의 여행이나 일상, 다른 농인들과의 인터뷰를 담았다.

고 대표가 농인과 장애라는 인식개선에 이토록 신경을 쓰는 까닭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차별적 표현과 그 시선을 넘은 선입견이 생계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농인들을, 다만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들리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나요.
“저는 3살 때 열병을 앓아서 완전히 청력을 잃었습니다. 서울 농아학교에서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농인들이랑 같이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생활에서 어려운 것은 없었습니다. 사회 안으로 들어와서 청인들과 교류를 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농인과 청인이 함께 있는 컴퓨터학원에 다녔고 5학년부터는 청인들의 교회를 다녀서 적응하는 것도 어려웠던 적은 없습니다.”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됐나요.
“미국 여행 중에 농인이 쇼핑몰 사업자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이렇게 사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에 담고 있었죠. 이후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회사 사정 때문에 그만두게 됐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간 중국여행을 했죠. 여행 중에 한국에서 진행하는 ‘나의 왼발’이라는 장애인의 인터넷 창업을 돕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미국여행에서 기억한 아이템 신청을 중국에서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합격이 됐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당시 위트라이프를 설립해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사업을 운영하면서 의사소통은 어떻게 하나요.
“직원들과 수어 또는 카톡으로 주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다른 업체와 사업을 진행할 때는 수어통역사를 요청해서 함께하거나 필담이나 카톡으로 진행합니다. IT 발전은 농인 처지에서는 환영할 만합니다. 초창기에는 어려웠지만 지금은 위트라이프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주방용품, 레저용품, 생활용품을 유통하는 업체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를 잘 기억해 주시죠. 제가 농인이라서 사업을 운영할 때 장점이 의외로 많습니다.”

-농인들이 주로 진출하는 분야가 있나요.
“저처럼 기업을 운영하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중국에는 더욱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이 한국보다 농인들에 대해 인식이 좋습니다. 한국은 안타깝게도 이 같은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는 않죠. 농인들은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수어와 필담으로 소통한다는 점 때문에 청인들이 중심인 조직에선 불편해 합니다. 주로 건축업과 제조업 등 생산직으로 많이 진출하고, 디자인이나 미술 쪽으로 진출하죠. 하지만 그쪽 분야도 인식이 호의적이지는 않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청각에 예민한 것과 같은 이치로 농인은 눈으로 보는 감각과 손의 감각이 다른 사람보다는 예민합니다. 미국에서는 이 점을 살려 외과의사, 파일럿, 대형트럭 운전사 등 다양한 직업군에 진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입니다. 특히 생계를 위해서 대형트럭 운전사를 하려고 해도 면허를 내주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1종 보통도 취득하기 어려웠어요. 농인들의 생계를 위한 다양한 직업이 필요하고 지원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농인과 청인들 간 급여가 평등했으면 합니다. 직접 조립회사를 다니면서 경험한 일입니다. 함께 입사한 동기보다도 월급이 20만 원이 더 적었습니다. 농인이기 때문에 자기 의사주장이 어렵다는 것을 악용한 것이죠. 더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노동이나 생계 이외에 어떤 부분이 개선돼야 할까요.
“문화콘텐츠를 즐기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공연과 연극, 뮤지컬은 청인들만 볼 수 있어요. 농인과 청인이 모두 즐기기 위해서는 10명의 농인 연기자와 음성으로 연기하는 열 사람이 필요합니다. 연기자는 다수인데 통역사는 한 사람이라면, 한 명이 10명의 연기를 대신하는 것과 같죠. 영화 역시 ‘베리어플’이라는 앱을 통해서만 한정적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 가서 봤으면 좋겠습니다. 자막이 나오는 안경이라든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구글은 농인을 위해서 음성이 자막으로 번역이 될 수 있는 번역기를 개발했는데 한국기업도 구글처럼 음성언어를 자막으로 바꿀 수 있는 번역기를 개발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기업가 외에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다하고 싶은데요(웃음). 여행도 좋아하고, 낚시도 좋아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일이라면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특별하게, 그중에 하나를 뽑으라면 여행유투버를 하고 싶어요. 세계여행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어요. 의사소통의 벽이 무너진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해외에 가면 농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별다른 차이를 못 느낍니다. 해외에서는 농인으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봅니다. 제가 여행에 미친 까닭이죠. 지난해 몽골을 여행했을 때 청인이 가이드를 했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어요. 보름간 다녀왔습니다. 밤만 되면 남자 네 명이 밤새도록 수다를 떨었습니다(웃음). 또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말레이시아 오성급호텔 제과점에 안내 직원 중에 농인이 있었다는 거예요. 만나 보니 농인이 직접 빵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그 제과점에는 수어로 안내하는 게시물도 있었고, 농인이라는 직원 명찰도 있었죠. 그때 농인이 당당하게 손님을 접대하는 일, 서비스업에 종사한다는 것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한국의 고급호텔에서도 농인들이 종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주 여행을 다니는 까닭은 해외에서 농인들이 많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한국사회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이뤄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은 데 있습니다.”

-‘장애’라는 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람 인(人) 안에는 장애라는 어떤 표식도 없습니다. 사람은 결국은 다 똑같다는 의미죠. 그런데 농인이라는 까닭으로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붙었어요. 해외에서는 농인을 농인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인식이 없고 단순한 문화의 차이일 뿐이라고 받아들이죠. 한국사회가 과거에 비해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도 말을 못하거나, 듣지 못해서 놀라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은 좋은데 듣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말의 인식 저변에는 장애인이라 불쌍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죠. 그런 인식이 있는 한 차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평등하게 똑같은 사람으로 봐야 합니다. 평등한 사회가 단숨에 오지 않겠지만, 우선 학교에서부터 여러 유형의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겁니다.”

-청인들에게 질문한다면.
“청인들에게 묻고 싶어요. 결혼해서 농인이 태어난다면, 또는 성장과정에서 농인이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제가 농인사회에서는 성공한 사례라서 농인자녀를 둔 청인부모들에게 가끔 전화가 옵니다. 저는 자녀의 특성 그대로, 모습 그대로 키우시라고 말합니다. 특성을 인정하고 키운다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농인으로 태어나거나 청각을 잃으면 청인과 똑같이 만들기 위해 달팽이관 인공장치를 삽입해 청력을 회복하는 와우수술을 합니다. 그렇게 농인을 청인으로 만들기 위해 수술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청인이 된 사람들이 다 성공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 잘사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소통이 된다고 다 행복할까요? 행복은 그 사람 그대로 인정해 주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녀가 농인으로 태어난다면 수어를 배우게 하고 농인 그대로 키워 주시길 바랍니다. 헬렌켈러 역시 농인으로서 성장했고 성공했습니다. 미국에는 농인의 유전자로 지니고, 조상 대대로 농인으로 구성된 가족도 있습니다. 그들은 농인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리어 자랑스러워합니다. 청인이 태어나면 오히려 아쉽다고 하는 거죠.”

취재=안형철기자/ 사진=노민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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