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신중기조'와 대비…'엇박자' 관측속 일각선 역할분담론
북미 긴장속 트럼프 미일 정상회담서 대북 발언수위 주목

일본을 방문 중인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24일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볼턴 보좌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달 초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라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사진=AP/교도/연합뉴스

'슈퍼 매파'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25일 북한의 최근 두 차례 발사체 발사와 미국의 북한 선박 압류 등 대북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압박에 나섰다.

북한의 발사체를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규정, 유엔 대북제재 결의 위반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쐐기를 박는가 하면, 미국의 북한 선박 압류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치'였다며 푸에블로호 송환 문제까지 끄집어냈다.

미국 고위 당국자가 북한의 발사체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이었다고 공개적으로 적시한 건 처음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이 그동안 신중한 '로키' 대응에 나섰던 것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3박 4일간의 일본 국빈방문 일정에 돌입한 트럼프 대통령이 도착하기 몇 시간 전 도쿄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볼턴 보좌관은 미·일 정상회담 등의 준비를 위해 먼저 입국한 상태였다.

북한이 전날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지 않는 이상 북미대화는 재개될 수 없으며 핵 문제 해결 전망도 그만큼 요원해질 것'이라며 대미 압박 수위를 한층 더 높인 가운데 '배드캅(거친 경찰)'의 '재등판'이 이뤄진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북러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방송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가 거론한 6자회담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밝히면서 북한과 중·러간 밀착 움직임에 견제구를 날린 이후 한동안 북한 문제에 대해선 공개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볼턴 보좌관이 다시 무대의 전면에 서면서 북미 간 긴장도 고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란, 베네수엘라 문제에 이어 북한에 대한 대응을 놓고도 행정부 내 엇박자나 균열 양상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사진=연합뉴스

볼턴 보좌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최근 두 차례 발사를 거론하며 "'결의 1695'를 포함해 안보리 결의는 모든 탄도미사일 발사를 금지하고 있다. 내가 작성했기 때문에 안다"며 자신이 주유엔 미국대사 시절인 2006년 대북결의안 초안을 직접 마련했던 사실을 언급했다.

이어 미일 정상이 "유엔 안보리 결의가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확실히 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이 보도했다.

그러면서 "북한 지도부도 트럼프 대통령의 견해를 잘 안다"며 '북한이 핵무기 포기라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는 걸 보여줄 때까지 제재를 유지하고 집행한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며, 이러한 입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대북 압박 전략 유지 방침을 분명히 했다.

볼턴 보좌관은 김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가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 정부의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Wise Honest)호 압류를 비난하고 지체 없는 반환을 촉구한 데 대해서도 압류가 "적절한 조치"였다고 반박하면서 "아마도 지금은 푸에블로호 송환에 관해 얘기할 적기"라고 1968년 북한에 나포된 미 해군 정보수집함인 푸에블로호 송환 문제를 불쑥 꺼내기도 했다.

3차 북미 정상회담 등 대화 가능성을 계속 열어두긴 했지만, 볼턴 보좌관의 이날 발언은 북한의 두 차례 발사에도 자극적 맞대응을 피하며 판을 깨지 않기 위해 부심했던 트럼프 대통령이나 폼페이오 장관의 '상황관리' 모드와는 큰 간극을 노출했다는 게 미언론 등의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2차 발사 당시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다', '북한이 협상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며 경고 수위를 높였지만, 하루 만에 "신뢰 위반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톤다운에 나섰다. 그는 '단거리 미사일'이라고만 하고 '탄도'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도 북한이 본토 위협 등 '레드라인'을 밟지는 않았다는 점을 부각하며 협상 재개의 시그널을 계속 발신해 왔다.

무엇보다 볼턴 보좌관의 '탄도미사일 규정'은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대표적 외교 치적으로 내세워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적 타격이 될 수 있다. 더욱이 '탄도미사일 발사'를 공식화하는 순간, 유엔제재 위반 문제와 연결됨에 따라 미국으로선 국제사회의 압박 등 향후 대북 대응에 있어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날 발언은 북한의 '새로운 셈법' 요구에 '동시적·병행적'이라는 표현을 '하노이 노딜' 이후 처음 언급하며 유연성을 시사한 국무부의 반응과도 극명한 온도차를 보였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에 대화 재개를 시도하고 있지만, 북한이 '무응답'이라는 걸 공개적으로 확인한 대목도 '대화와 협상은 계속 진행 중'이라는 국무부의 공식 입장과는 결이 달라 보인다.

볼턴 보좌관의 발언을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의 발사체 규정에 있어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나갔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평양과의 외교에 다시 시동을 걸기 위해 발사의 의미를 축소해온 트럼프 행정부의 노력과는 괴리가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일각에서는 북한과의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트럼프 행정부 내 '굿캅·배드캅'의 강온 역할분담론 차원이라는 시선도 있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대북 노선을 놓고 트럼프 행정부 내 파열음이 다시 불거진 양상이 연출된 셈이다.

특히 볼턴 보좌관은 '12만 병력 중동 파견 계획'을 비롯, 이란 및 베네수엘라 문제 대응을 놓고 초강경 노선을 밀어붙여 트럼프 대통령을 화나게 했다는 보도가 최근 잇따라 나온 바 있다.

대외 정책에서 외교.안보 '투톱'인 볼턴 보좌관과 폼페이오 장관간 불화설이 최근 들어 다시 표면화된 가운데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와 관련, 볼턴 보좌관이 자신을 약화하고 전체 협상 과정을 거의 교착상태에 빠뜨렸다고 반복적으로 말해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볼턴 보좌관의 발언이 대북 강경 노선을 견지해온 일본을 의식, 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대북 공조를 과시하기 위한 차원도 이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볼턴 보좌관이 이처럼 '강경 발언'으로 자락을 깔아놓은 가운데 이제 시선은 오는 27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이뤄질 북한 관련 논의로 모아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수위의 메시지를 내놓을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현 북미간 긴장국면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기조를 가늠할 방향타가 되는 동시에 볼턴 보좌관의 대북 정책 관련 영향력 및 향후 입지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입'에 이목이 쏠린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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