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의 옛 지명은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구미리(九美里)였다. 구미리는 오리뜰, 넘말, 골안, 벌말, 모내, 석촌, 안넘말, 중간말, 뒷넘말 등을 함께 모아 불렀던 마을이름이다.

당시 오리뜰에는 구미리 여러 마을보다 넓은 들이 있었고 구미리 전체 140여 가구 중 오리뜰에는 35가구가 모여 살았다고 한다. 오리뜰 마을 앞에는 제법 커다란 웅덩이가 있었는데 이 웅덩이로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오리들이 떼지어 날아왔다 하여 오리뜰이라 불렀다.

또 마을 하천을 따라서 방풍림을 조성할 때 오리나무를 많이 심은 것을 이유로 오리뜰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곳 오리뜰에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채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던 아름다운 농악이 있었고 당시 지명을 사용하여‘오리뜰 두레농악’이라 불렀다.

오리뜰 마을은 평야지역이기에 우리 전통 농경사회 모습 그대로 이어져왔고 농사를 업으로 살아가며 피로를 덜어내고 공동체간 협동심을 다지기위해 행해지던 두레놀이가‘오리뜰 두레농악’으로 존속해왔다.

그러나 1973년 성남시로 바뀌고 분당으로 개발되며 질곡의 세월을 울려퍼지던‘오리뜰 두레농악’의 풍물소리는 고요함속으로 들어가고, 농악을 놀던 사람들(半農半藝人)도 뿔뿔이 제갈길을 가게되면서 오리뜰 두레 농악은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봉착한다.

천만다행으로 2006년 성남문화원과 한국농악보존협회 성남지부, 경기도 문화재전문위원 이병희 선생님 등 당시 연희자들의 고증과 체계적인 복원노력으로 어렵사리 원형을 찾았다.

그리고 지난 4월 27일 분당중앙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제26회 정기공연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하니 성남시민의 한사람으로서 기쁘지 아니할 수 없다.

‘오리뜰 두레농악’은 일상에서 주로‘육띠기’(쇠, 징, 제금, 북, 호적으로 연주하는 형태)나‘삼잽이‘(제금, 장구, 호적으로 굿거리 가락을 연주하는 형태)로 연주했으며, 잡색놀음인‘건달춤’도 추었다.

민속명절이나 마을의 큰 대소사, 각종 행사 때는 20명 안팎의 치배(농악패의 악사)들을 구성하여 오리뜰 농악을 연희하였고, 정월에는 짠지패를 구성하여 지신밟기를 하곤 했다.

두레 농악의 두드러진 점이 파종과 추수를 축복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그 해 농가의 평안을 비는 것인데 ‘오리뜰 두레농악’에서는 농사 즉, 가래질, 써래질, 볍씨 뿌리기, 모찌기, 모심기, 논매기, 벼베기, 벼털기, 벼말리기, 벼담기, 벼메기를 놀이 형태로 풀이한 것을 복원하여 전한다.

그리고 농악에는 진법(陣法)이 있는데,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장사진(長巳陣)·방울진·을자진(乙字陣)·오방진(五方陣) 등의 모양을 만드는데 ‘오리뜰 두레농악’의 진풀이에는 십(十)자진, 대(大)자진 등이 특징이다.

또한 놀이와 놀이 사이사이, 진풀이 장단과 장단 사이사이를 삼잽이의 반주로 채워가며 불러주는 다양한 민요는 고된 노동의 피로를 풀어 줄 뿐만 아니라 일의 능률도 높여주는 일석이조다.

이처럼 ‘오리뜰 두레농악’은 자연 발생적으로 마을의 본연의 특색을 드러내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고 마을 사람들이 서로간 협심하여 놀아진다. 특별한 전문가 없이 만들어진 대중음악으로 문화적 보존가치 또한 높다고 할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빠르게 변화하며 발전하는 도시문명 속에서 아름다운 전통을 간직한 옛날의 발자취는 우리에겐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남는다. 선조들의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몸짓으로 흘러온 농악은 한국 전통문화의 대표 장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류문화가 세계의 중심에서 뿌리내리고 있다. K팝, 한류가 지구촌에서 인기몰이를 하고있는 지금 우리의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보존하며 전승하는 작업이 우리 고장 성남에서 이뤄지고 있다.

최만식 경기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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