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이영자 씨가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지난 연말엔 지상파 두 곳의 연예대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그의 전성시대를 이끈 수훈갑은 ‘전지적 참견 시점’이란 예능 프로그램이다. 원래 2부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제작됐지만 인기를 끌면서 정규방송으로 편성됐다. 컨셉트는 연예인의 일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관찰 방식 예능이다. 여기에 매니저의 제보와 폭로가 합세해 재미를 더한다.

‘전참시’는 방송이다. 실제 생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그것도 내밀한 부분까지 들여다본다면. 수원에 사는 40대 중반 직장인 정용식(가명) 씨의 예를 보자. 정씨는 슬슬 붙기 시작한 뱃살이 신경 쓰여 얼마 전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오가며 스마트폰 앱으로 얼마나 걸었는지 등 건강상태도 살핀다. 점심시간엔 회사근처 식당에서 동료들과 밥을 먹고 커피전문점에 들러 아메리카노를 즐긴다. 결제는 모두 카드로 한다. 현금은 언제 썼는지 기억도 가물거린다. 퇴근하며 뉴스나 관심사를 검색하고, 편의점에 들러 일주일에 두세번 캔맥주를 구입한다. 집에 와서는 소파에 기대 지인들이 올린 SNS 게시물에 공감을 표시하고, 유튜브를 열어 알릴레오나 홍카콜라TV 등 동영상을 본다. 그러다 공감가는 내용이 있으면 가끔씩 댓글도 달곤 한다.

웬만한 직장인의 일상이다. 그러나 정씨의 하루는 정씨만 아는 사생활이 아니다. 집을 나서 돌아올 때까지 엘리베이터, 길거리, 사무실, 편의점 등 온종일 CCTV 샤워를 받았다. 지하철 안에서는 수백대의 스마트폰 카메라가 번뜩인다. 밥 먹고 커피 마신 내용은 고스란히 카드사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참고로 우리나라 현금 사용량은 10% 내외에 머문다. 언제 어디를 가고, 뭘 먹고 어떤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는지 등 일상이 상세히 기록된다.

내면을 보자. 개인화서비스가 보편화 되면서 디지털은 사적인 영역까지 깊숙이 파고 들었다. 포털은 인공지능과 결합하면서 점점 더 지능화 되고 있다. 올 초 선보인 네이버앱은 맞춤형 서비스를 넓힌 것이 특징이다. 인공지능이 추천해주는 ‘에어스 추천’은 사용자의 개인 취향을 저격한다. 정씨의 이용 패턴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학습해 최적의 서비스를 추천하는 식이다. 건강앱 등 의료서비스는 정씨의 몸상태를 살핀다. 얼마나 걸었는지, 심장박동은 규칙적인지, 몇 시에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하는지 등 건강상태를 꼼꼼히 파악하고 클라우드 서버에 차곡차곡 쌓는다. 어쩌다 늦게까지 무리한 날은 경고 메시지가 날아오기도 한다. 사회활동 분석은 SNS가 맡는다. 빅데이터 과학자 마이클 코신스키에 따르면 페이스북 분석을 통한 정확도는 90% 안팎에 달한다. 샘플도 많이 필요 없다. ‘좋아요’를 누른 포스트 300개만 확보하면 그의 배우자보다 더 정확하게 그를 파악할 수 있다. 워낙 거대한 데이터를 통해 효력을 검증했기 때문이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토요일 새벽에 알릴레오를 봤다면 그 다음 주 토요일 새벽에 유튜브를 열면 알릴레오가 제일 위에 뜰 것이다. 정씨는 이미 ‘전지적 참견자’에 의해 개인적 성향까지 면밀하게 분석되고 있는 것이다.

연결을 끊고 생활하면 되지 않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인’으로 살지 않는 이상 연결사회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디지털은 금융거래, 사회활동, 정보취득 등 생활 전반을 지배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가 만들어낸 일상의 흔적들은 수집되고 분석되며 나보다 더 나를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초투명사회를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즉 정도(正道)를 지키는 것이다. 올드한 얘기 같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특히 리더가 되려는 자는 더욱 그렇다. 유행처럼 번지는 ‘OOTV’, 관심을 끌기 위한 막말 퍼레이드 등은 그래서 더 우려스럽다. 마치 ‘별풍선’ 더 받으려 무모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BJ처럼 아슬아슬하고 거침이 없다. 그러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빅데이터에 쌓여진 일상의 모든 행동과 패턴들은 어느 순간 체인으로 엮여져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당신을 규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내 모습은 어떻게 규정지어지고 있을까. ‘전참시’ 이영자 씨의 어록이다. “나는 한번 먹어본 음식은 절대 잊지 않는다.” 디지털은 당신의 소소한 움직임도 절대 잊지 않는다.

민병수/디지털뉴스부장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