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는 세계유산이 3곳이나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수원화성, 나머지 두 곳은 2016년 11월과 2017년 10월, 각각 국제관개배수위원회의 세계관개시설물 유산이 된 축만제(서호)와 만석거다. 만석거는 1795년 봄에 축조됐다. 수원화성을 한창 건설하고 있을 때였는데, 몇 년째 전국적인 가뭄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수원화성 건설을 잠시 중단하고 저수지를 축조했다. 저수지만 축조한 것이 아니라 저수지 하류에 대규모의 황무지를 개간해 국영농장인 대유둔전을 만들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했는데, 현재 이름만 남은 대유평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대유둔의 첫해 농사가 풍년이 들어 수원은 가뭄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만석거와 대유둔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일화다. 만석거를 축조한 다음 그해 가을에는 만석거 남쪽 언덕에 영화정을 짓고 만석거에 연꽃도 심어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가 3기 신도시를 확정했다. 지난해 9·13 부동산 대책에서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계획 발표 이후 8개월 만이다. 지난해 9월21일 1차(3만5천 가구), 12월19일 2차(15만5천 가구)를 지정한 뒤 마지막 3차(11만 가구)를 지난 5월7일 발표했다. 이 중 신도시라 불릴 만한 곳은 남양주 왕숙(1천134만㎡, 6만6천 가구), 하남 교산(649만㎡, 3만2천 가구), 인천 계양(335만㎡, 1만7천 가구), 고양 창릉(813만㎡, 3만8천 가구), 부천 대장(343만㎡, 2만 가구)으로 모두 5곳이다. 시장은 3기 신도시에 대해 불만이 많다. 먼저 3기 신도시 지정 지역이 외곽, 정확히 서울 강남으로부터 외곽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직선거리로 강남까지 거리를 보면 하남 교산이 13㎞로 가장 가깝고, 남양주 왕숙 20㎞, 고양 창릉 20㎞, 부천 대장과 인천 계양 25㎞ 정도다.

이번 3기 신도시 계획을 주도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을 다시 들여다보자. ‘경기도 대규모 3기 신도시 입지가 강남권 수요를 대체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질문에 김 장관은 “강남의 수요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강남이 좋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정확한 워딩은 이렇다. “저는 국민들이 원하는 어느 지역에 살고 싶다고 했을 때 원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지역이 국민들의 원하는 바람들을 담아내는 주거 여건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특정 지역에 살아야만 주거 만족도가 높은 나라가 아니라 어디에 살더라도 주거 만족도가 높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저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옳은 말이다. 국민들이 사는 모든 곳이 주거 만족도가 높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기가 곧 무릉도원으로 가는 첫발이고, 유토피아에 이르는 첫 단추일 것이다.

3기 신도시 철회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불만이 큰 탓에 3기 신도시 계획이 서울과 경기도 집값 하락과 안정세를 보이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김 장관의 강남 발언을 두고 3기 신도시 입지가 수요가 집중된 강남과 거리가 멀다는 걸 에둘러 표현함으로써 한계를 인정한 것이라는 냉소도 적지 않다. 인근 고양 일산·파주 운정·인천 검단 등 1·2기 신도시 주민들은 항의 집회를 벌이고 있다. 기존 신도시도 현재진행형인데 서울(강남)과 더 가까운 지역에 신도시가 조성되면 공급과잉으로 인한 미분양에 집값이 하락한다는 까닭에서다. 이들은 약속했던 자족기능과 교통망 확충이 우선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예정된 3기 신도시 주민설명회도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고 있다.

정조대왕은 조선시대 문예 부흥기를 이룬 왕이다. 여기 더해 조선을 넘어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수원화성)를 조성했다. 농업이 전부였던 시대, 수원화성은 교통체계 등 도시 인프라와 좋은 일자리 등 직주근접의 자족기능을 갖춘 혁신도시였다. 당초 수도이전이 목적이었으나, 정조대왕의 갑작스런 별세로 인해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수원화성은 220여 년이 지난 오늘 인구 125만의 수원시로 거듭났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은 국민들에게 고통만을 안긴다. 그렇다고 국민들의 모든 불만이 정책이 돼서는 안 된다. 200년, 300년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신도시 조성을 위해 보다 멀리 보기를 바란다.

이금미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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