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지난 주말 전국의 극장 박스오피스가 열리자 전 좌석이 메워지며 또 하나의 기록을 예고한 영화 ‘기생충’은 빛이 집에 꽉 차는 상류층과 한줄기도 어려운 하류층의 두 집안을 번갈아 비치고 있다. 햇빛조차 부자(富者)와 빈자(貧者)가 차이가 나는 두 가족을 통해 다른 상징인 부잣집의 계단과 가난함의 상징이 돼버린 반지하로 카메라는 끊임없이 몰고 있다. 영화를 만든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햇빛조차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나는 슬픈 느낌이었으리라. 물론 잠깐의 빛은 빈자의 집에도 허락된다. 가난으로 데이터용량이 부족해 윗집의 와이파이를 찾을 때, 공교롭게도 그 빛은 화장실 안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양변기 옆을 비추고 있다. 변기는 정화조의 압력 탓으로 화장실 맨 위에 올려져 있고 영화 뒤편 장마로 차 오른 변기는 모든 오물을 뱉어내고 있다.

“소득격차 심해서 성공하려면 부잣집서 태어나야” 국민 80% 이상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통계가 구체적으로 나왔다. 다시 말해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은 우리 안의 소득격차가 너무 크다는데 동의하고 인생에 성공하려면 빛이 거실에 가득 차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사회의 평등성과 공정성에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전국의 성인 3천873명을 대상으로 사회갈등 인식을 조사한 결과다. 문제는 소득격차 뿐만 아니라 사회 공정성에 대한 인식마저 전반적으로 나빴다는데 있다. 과거처럼 본인이 열심히 해 집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지조차 희박해진 현실이다.

#계단과 반지하

영화는 가난한 가장이 허리만 펴면 선반에 머리를 박고 묘하게도 시선은 지상에 내리 꽂힌다. 실상 그 가난함은 지하에 위치하지만 마음은 늘 지상에 가 있다. 그래서 형편없이 취한 사람의 소변 줄거리가 빈자 반지하방 창문, 코앞에서 떨어지고 소독차의 연기는 뿜어지자 마자 방안 가득히 들어올 수 밖에 없는 빈자의 현실이다. 심지어 영화 후반부의 장마로 인한 빈자의 거리는 사람들의 발과 자동차의 발인 타이어가 보이는 공간을 구정물로 꽉 채우면서 서울대 문서 위조학과 학생 자격이 충분하다던 딸의 담배연기로 남은 상층부를 메운다. 봉 감독 다운 이미지메이킹이다. 물론 감독이 의도하는 빈자가 부자에 대한 ‘물타기 효과’도 첨부된다. 기생충처럼 부잣집에서의 생활. 가짜 영어 선생, 가짜 미대생, 가짜 드라이버, 가짜 가정부. 모두가 부잣집에서 벌이는 대리만족이다.

다시 보고서는 인생에서 성공하는 데 부유한 계단이 중요하다는 말에 절대 동의하고 있다는 통계를 들이대고 있다. 이런 말은 한국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려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에 대한 동의 비율이 66.2%, 즉 절반을 넘고 있다는, 예상은 했지만 다소 충격적인 수치를 어떻게 봐야 하냐는 고민을 함께 안겨주고 있다. 사회에 불평등이 팽배해 있다는 인식이 높고 그중에서도 사법·행정에 대한 불신이 강한 것은 최근 나타난 여러 사건들의 의도적인 보여줌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법의 집행이 평등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의견이 고작 12.5%에 불과했다는 결과는 정부에서 원하는 수치를 넘어서 국회에서의 동의를 뛰어넘어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바로잡아 나가야 할 명분마저 던져 주고 있다. 부(富)에 대한 가치나 힘은 이미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의심받고 있은 지 오래되면서다.

#엔딩

영화 후반부는 전반의 재미나 패러디를 넘어 다분히 냉소적이다. 그렇다고 아주 희망을 짓뭉기지도 않는다. 아들 친구가 선물로 내민 부의 상징인 수석, ‘산수경석’은 영화 끝 빈자의 아들이 마지막까지 안고 가는 상징으로 남는다. 무엇이 상징일까.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일생 노력하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높다는 의견이 1.6%로 극소수였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자식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변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매우 높다는 의견이 1.6%에 불과했다는 결과를 가감 없이 붙이고 있다. 이 말은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인식이 마지노선을 넘어서면 사회에 아노미와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흘리고 있다. 계단과 반지하의 불평등·불공정 문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결론이다. 빈부의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이동 통로를 재확보하는 방안이 안 보이면 얘기는 가차 없이 반지하에서 맴돌게 될 수 있어서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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