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속칭 메건법이란 것이 있다. 이 법은 1996년 5월에 제정된 성폭력 관련 법률로서 1994년 7월 뉴저지 주에서 상습 성범죄자에게 희생당한 소녀 메건 칸카의 이름을 따다가 지칭한 것이다. 법률의 주요 내용은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지역사회에 제공하여 지역단위 차원에서 감시하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뉴저지 주의 법 제정 이후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유사한 법과 제도를 입법하여 운영하고 있다.

한편 영국에는 클레어법이란 것이 있다. 이 법은 2009년 영국에서 일어난 유명한 데이트폭력 사건을 근거로 만들어졌다. 클레어 우드라는 여성이 인터넷 연애 사이트에서 만난 남자의 과거 성폭력 전과를 모른 채 교제를 하다가 외도로 인해 헤어진 직후부터 전 남자친구로부터 지속적인 폭행, 협박 등을 당했다. 클레어는 살해당하기 직전까지 그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는 등 위협한다거나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경찰에 거듭해서 신고했다. 경찰은 그러나 남자친구를 잠시 유치했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결국 2009년 2월 전 남자친구에 의해 클레어는 강간?살해당한 후 시신은 불태워졌다. 딸의 사망 이후 클레어의 부친은 딸이 만일 사전에 가해자의 폭력 전과를 알고만 있었더라도 그와는 굳이 만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연인 간에는 폭력 전과를 서로 확인할 수 있도록 입법을 청원하였다. 그 결과 가정폭력 정보공개 청구제도, 일명 클레어법이 도입되었다.

피해자의 이름을 따서 입법을 한 영미법 국가의 사례들을 찾아보자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이런 입법의 사례들은 국민의 아까운 생명손실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보자는 그들 나라의 의견 수렴절차와 입법부의 즉각적인 호응의 자세를 짐작하게 만든다. 최근 국내에서는 성폭행을 목적으로 피해자를 추격하는 다양한 장면들이 CCTV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신림동에서도 옥수동에서도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하여 혼자 사는 여성들이 얼마나 위험상황에 놓여 있는지 일반인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성범죄의 전조적 징표로서 스토킹은 일종의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행위인 것이다. 또한 모 언론사에서 조사한 2018년도 살인사건 중 여성이 피해자였던 사건에 있어 스토킹은 거의 삼분의 일 정도 되는 살인행각의 전조적인 징후였다.

안인득 역시 연쇄살인을 저지르기 전 이웃이었던 여고생을 지속적으로 스토킹하였다. 이로 인해 대여섯 번을 경찰에 신고하였으나 당시 경찰은 이를 제대로 사건화 하지 않았다. 만일 우리나라에 스토킹 방지법이 있었다면 아마도 안인득은 살인의 전조행위인 스토킹으로 구속이 되어 12살짜리 어린 여아와 여고생은 여타 다른 미성년자들처럼 아름다운 미래를 맞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도 많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모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입법부는 미국의 메건법이나 영국의 클레어법의 입법과정처럼 국민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런 아우성을 듣지도 못하는 저들의 청력은 어떤 수준인 것인지 궁금하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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