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화창한 오늘 같은 날이면, 여름날 고향집 마당에서 모닥불을 펴 놓고 먹던 저녁상이 더욱 아름다운 기억으로 떠오른다. 초저녁 환한 달빛이 툇마루 깊숙이까지 들면 가족들의 정 가득한 이야기보따리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 마당 위에는 멍석이 깔리고, 큰 상을 둘러 달빛을 깔고 앉은 식구들은 덕담을 나누며 밥과 함께 사랑을 마신다.

바람도 잠든 이런 여름밤이면, 그토록 고향을 그리워하던 H가 생각난다. 멀리 모국을 떠나와 외롭게 살아가야하는 그녀는 계절이 바뀔 때 마다 몸살처럼 고향이 그리워진다고 했다. H는 나름 자생력을 가지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잘 지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산 설고 물 설은 타국에서 살아가야하는 이국인들의 외로움으로 가슴 한편에 숭숭 바람이 지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나그네의 삶이 아닌가한다고 했다. 그녀는 15년 전 대한민국으로 시집 온, 여성결혼이민자이다. 그녀의 고향은 너무나도 밤하늘이 예쁘다고 하였다. 마치 딸 수 있을 듯 찬란했던 별들은, 늘 그녀의 꿈속에서 고향을 그리게 한다고 했다. 넓은 초원에 흐르는 잔잔한 달빛에 풀잎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오늘 같이 맑은 초 여름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향수병으로 잠 못 이루며 마음도 달빛에 잠긴 채, 이 여름에는 고향식구들을 만나러 가야만 할 것 같다고 했다. 여름은 그녀에게는 석류알처럼 영롱한 그리움을 담는 계절이라고 했다. 어느 여름날, 자신의 나라에 와서 회사의 지사에 근무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고, 그를 따라 이국땅에 와서 딸 둘을 낳아 잘 기르고 있다. 그녀는 그런대로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그래도 요즘 같은 날이면 부모님과 형제자매는 물론 친구들도 보고 싶어 불면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그녀의 서러움이 조끔씩 희석되어가는 듯 했다. 어느새 그녀의 음색이 화사한 별빛처럼 밝아졌기 때문이다.

여름밤, 별떨기 같은 보고 싶은 얼굴들이 가슴을 두드릴 때는 하늘의 저 많은 유성들이 창문을 활짝 열고, 방안에 바람을 들이면, 저녁을 먹고 초승달이 아쉬워 잠을 청해도 뒤척이다 남모를 아픔으로 아침을 연다고 한다.

챙이 넓은 새하얀 모자를 쓰고 공원을 걷으면 개구리 울음 소리 잦아들고 그리운 가족들은 만나지도 못한 채 또 이 여름은 가고 혼자만 집을 지키며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아린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했다, 그것 역시 행복한 기다림으로 여기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자, 그녀는 서서히 자기의 감정을 추스르며 음성의 톤이 편안해져갔다. 초여름 새벽이 일러준다. 그럴 때면, 누구나의 마음에도 작은 텃밭이 펼쳐진다고... 동백나무 묵은 잎 위에 새 잎이 돋아나고 아침 창가에서 먼 초원들을 바라보며 인사를 전하고 안녕을 기원하며 하루를 보내노라면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는다는 것이다.

그녀의 꿈은 작은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을 일구며, 두 딸을 아나운서로 키워서, 가족이 친정나라에도 가끔 방문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평범한 한국인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H는 다문화가족이라는 특별한 배려나 수혜가 아니라 서로 이해하며 존중하고 조화롭게 상생하기를 소망하였다.

여름의 문턱에서 밤이면 별 밭 같은 그리운 얼굴들로 근심도 깊어 가지만, 그녀는 까마득히 떠 있는 별 하나 꿈꾸듯 다가와 보헤미안처럼 허허로웠던 가슴을 새벽하늘에 날려 보내며, 오늘도 사랑으로 하늘 길을 연다.

서종남 한국다문화교육상담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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