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에어컨을 설치할까 고민 중이다. 올해 봄부터, 사실은 지난해 여름 폭염을 겨우 견디고 난 직후부터 고민해왔다. 가구나 가전이 딸린 원룸에 살던 시절 2년 정도 무더운 여름날 저녁에 에어컨의 효능을 절감하곤 했지만 대부분 선풍기로도 충분한 여름날이었다. 사실 살 곳을 찾을 때는 늘 주변에 공원이나 도시숲과 학교운동장이 가깝거나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을 찾았다지만(사실은 누구나 원하지만), 확률은 반반이었다. 도심에서 주거공간으로서 저렴하면서도 주변이 쾌적한 지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은 이런 운 좋은 선택도 무색하게 만드는 111년 만의 폭염이 찾아왔다. 수원시에서 가장 시원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황구지천 주변과 칠보산 자락의 호매실동에 살지만 2018년 여름은 한 달여 넘게 동이 터오는 시간까지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불과 몇 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첫해인 2011년에는 아예 선풍기도 없이 여름을 났다. 사실 일주일 정도 불면의 밤을 보냈지만 자연 바람에만 의존한 것 치고는 견딜만한 날들이었다. 그 뒤로 최근까지 주변으로 아파트 단지들이 하나둘 들어서고 시각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답답해지고 도로도 많이 뚫리고 지나는 차량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래도 평생을 섬에서만 살아온 어머니가 고향마을처럼 시원한 바람이 분다고 감탄하곤 했던 곳인데, 이제 긴 여름의 폭염은 모두에게 일상이 된 듯하다. 도시의 운 나쁜 공간에 사는 사람들은 매년 여름이 예고된 재난일 수 있다.

이제 기후변화시대를 두고 누구도 옳고 그름의 다툼을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 원인을 우리가 성취하고 선택한 생활 깊숙한 곳에서 찾으려 한다. 생활의 효율을 위해 도시를 건설하고 확장하는 동안, 삶을 윤택하고 편리하게 하는 모든 문명의 이기를 도시에 쌓아가는 동안, 필요보다 넉넉함보다 더 많은 이윤을 축적하는 동안, 그 이윤이 사회 곳곳에 흘러들지 못하는 동안, 가까운 숲과 작은 하천들, 건강한 먹을거리를 주던 농지와 가까이 살던 다양한 생명들이 사라졌고 도시의 기초자원(물, 식량, 에너지)의 자립도는 매우 낮아졌고 미래 불확실성은 높아졌다. 도시는 풍요롭고 비대해졌지만, 건강을 잃고 자연과 멀어졌고, 사람(노동)에 더 의존하면서도 관계는 더 멀어지는 이상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는 폭염과 미세먼지를 얻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마저 얻었다. 사회를 조직하고 유지하기 위한 기본 여건이 취약해지고 있다. 이 취약성은 폭염을 일상으로 맞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증폭할 것이다. ‘폭염’이 아니라 그 피해로 인한 재난이 일상이 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이 과정을 다시 되짚어보자.

산업화 이후 한반도는 평균기온이 1.8℃나 올랐다. 같은 기간 0.85℃ 상승한 세계 평균기온보다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이 차이에는 도시화 요인 20~30%가 포함되어 있다(기상청). 그리고 평균값 아래에는 폭염과 혹한을 포함한, 이전보다 잦은 극단적 이상 기후 현상들이 숨어있다. 한반도의 평균기온 변화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적응하는데 ‘매우 특별한 대책’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기후변화문제는 한 지역의 노력만으로도 단기간의 대책만으로도 현재의 합리성을 기준으로 한 목표만으로도 대응할 수 없는 문제이다. 현대의 위험은 환경위기에서 오는 누적되는 위험(미세먼지, 유해물질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기후변화문제도 그 차원은 달라도 성격은 닮았다. 그래서 대응과 적응을 위한 노력도 한 세대 이상, 여러 차원에서 축적이 됐을 때 제대로 효과가 나타난다. 지금 어린이라면 청년기를 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일터를 누빌 것이고, 지금 청년이라면 훨씬 건강한 도시에서 노후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고, 지금 장년이라면 사회의다양한 안전망 안에서 가족, 친구들과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안전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후변화문제는 보다 젊고 평균 이상의 대책이 필요하다.

2018년 폭염의 기억도 지난 40여 년간 가파르게 상승한 지구 평균기온의 흔적과 함께 자연과 사회에 깊숙한 흉터로 남을 것이다. 미래 세대가 그 흔적을 발견하고서 “위기의 정점에서 현명한 ‘선배 시민들’의 선택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로 전환하는 이정표를 세웠다!”라고 선명하게 기록할 수 있길 바란다. 그 역사를 지금 모든 시민과 세대가 함께 써가야 한다. 우리 생활에서 모든 필요 이상의 것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와 조사를 진행하자. 사회에 자원을 분배하는 엔진과 연료로서 우리가 선택한, 잉여를 생산하고 경쟁적으로 이윤을 축적하는 현재의 정치경제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자. 시민들은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빨대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제도화되고 있다. 이 나비효과가 모든 산업생산에 영향을 미쳐 태풍을 일으키길 바란다. 모두가 태풍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뜨거운 물방울이 되자.

윤은상 수원시민햇빛발전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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