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제동의 고액 강사비가 논란이 됐다. 기사를 접한 사람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하다. 사실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이미 강의업계엔 파다하게 소문난 일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한 회에 500만 원 이상 고액의 강사비를 받는 이들의 명단이 돌아다녔다. 김제동을 비롯해서 설민석, 혜민, 이동진, 김창옥, 김미경 등등.

그와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는 곳도 있다. 책고집이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과 문학평론가 신형철 교수, 기생충박사 서민 교수, 한신대 이해영 교수, 성공회대 조효제 교수, 작가 은유 등은 위에서 거론한 고액강사들에 비해 결코 뒤질 게 없는 분들이다. 그러나 그분들은 앞서 언급한 강사비의 50분의 1을 받고도 기꺼이 강의한다. 더러 받지 않기도 한다. 이유는 하나, 책고집의 취지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수원 장안문 근처에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의 둥지 꾸렸다. 그리고 지금껏 줄기차게 인문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둥지는 계속해서 변모했고 책고집 인문강좌는 나날이 화제를 낳고 있다. 전국의 지자체에 무료 강연이 넘쳐나는 때에 유료 강연으로 꿋꿋하게 버틴다. 책고집엔 뭐가 있나, 대체 책고집 강연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책고집 인문강좌는 크게 두 가지 특성을 갖는다. 하나는 실험성이고 다른 하나는 차별성이다. 책고집 강연은 결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강연에 참여한 강사는 보수와 진보는 물론이고, 기성과 신인, 유명인과 청년을 아우른다. 분야도 다양하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허무는 한편, 사회적 이슈를 적극 수용한다. 인권과 환경, 노동과 평화, 미디어와 사회적 담론이 강의주제로 올라온다.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다시 놀라움을 표한다. 일개 작은도서관에서 어떻게 저런 강사진을 구성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은 자연스럽게 두 번째 특성, 즉 차별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책고집은 여타의 작은 도서관과 다르다. 비단 공간이나 장서의 수, 강연 횟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책고집의 차별성은 필자의 이력과 신념, 그리고 회원들의 선한 의지에 기반한다. 필자에겐 오래 전부터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최 대표는 15년 전 서울역 주변의 노숙인들과 인문학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이후 미혼모와 교도소 수형인, 어르신, 지역자활에 참여한 저소득 주민 등과도 줄기차게 만나왔다. 책고집 강연에 참여하는 분들은 강사든 수강생이든 필자의 활동과 신념에 기꺼이 동의와 지지, 공감을 표한다. 그래서 책고집엔 늘 사람이 꼬인다.

지금 책고집은 인문강좌 시즌3 ‘시민이란 무엇인가?’를 진행 중이다. 7월부터는 시즌4 ‘자연과 인문의 만남’을 진행한다. 특히 시즌4에서는 무보수 인턴을 자원한 미국의 조지타운대 최영은 교수가 합류해 청소년을 위한 과학교실을 운영한다. 하버드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최 교수는 필자와 SNS로 인연을 맺은 뒤 자연스럽게 책고집의 회원이 되었고, 이후 줄곧 책고집 인문강좌에 관심을 표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직접 참여하기 위해 여름방학 3개월을 오롯이 책고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최 교수가 진행하게 될 ‘청소년 과학교실’은 벌써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회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같은 기간 주중에는 내로라하는 과학저술가들의 강연이 이어진다.

책고집의 다양하고도 차별적인 실험은 계속 된다. 1년 동안 지속가능성을 타진한 뒤 내년부터 본격적인 인문학 기반의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것이다. 현재 책고집의 지속가능성을 염려하는 분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뜻과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없다. 자본이 필요하고 또 사람이 모여야 한다. 그를 위해 현재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 중이다.

책고집의 지향은 뚜렷하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 인문독서공동체를 구축한 뒤,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 낮은 곳으로 향해 나아간다. 물론 매개는 인문학의 향기이다. 현재 회원들과 논의하고 있는 책고집의 방향성과 지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낮은 곳의 인문학, 즉 경제적 약자를 위한 인문강좌의 구조화다. 다른 하나는 어르신을 위한 인문학 강좌의 기획이다. 개인의 선의와 일회성 이벤트, 시혜적 강좌가 넘쳐난다. 책고집은 다른 길을 간다. 낮은 곳의 인문학, 어르신을 인문학을 줄기차게 해낼 것이다. 소외계층 인문학의 구조화를 통해 우리 사회가 보다 따듯하고 향기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데 일조할 것이다.


최준영/ 작가, 거리의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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