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 명당으로 유명한 김명관 고택은 전북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814(공동길 72-10)에 위치한다. 조선 후기 호남지역 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어 1971년 국가민속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지정 당시는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김동수 가옥’이라 하였다. 그러나 소유자의 이름으로 문화재 명칭을 정하다보니 집의 역사와 유래를 알 수 없다하여, 문화재청은 최초 설립자의 이름으로 명칭을 정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에 따라 2017년 2월 김동수의 6대조인 ‘김명관 고택’으로 변경되었다.

김명관(1755~1822)은 영조·정조·순조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17세 때 이 집을 짓기 시작하여 10년 만에 완공하였다. 이곳에 터를 잡게 된 것은 꿈에 도깨비들이 나타나 점지해주었다고 한다. 도깨비들이 땅을 방망이로 치며 이곳에 집을 지으면 천섬지기 부자가 된다고 장담하였다고 한다. 과연 이집에 살면서부터 가을에 수확하는 벼가 1천200섬이 넘는 부자가 되었다.

집 바로 뒤의 산은 창하산(150m)이다. 낮지만 횡으로 길쭉하게 뻗어 있다. 마디마디 여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는데 그 모습이 지네의 몸통과 닮았다. 아래에는 지네 다리처럼 작은 능선들이 여러 개 있다. 지네의 머리에 해당하는 맥은 안채 중앙으로 이어져 왔다. 이곳 지명을 지네 오(蜈), 지네 공(蚣)자를 써서 오공리라 한 이유다.

지네와 닭은 서로 상극 관계다. 닭은 지네를 보면 쫓아가 발로 밟고 부리로 쪼아서 먹는다. 그러나 지네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독을 뿜어 닭을 죽이기도 한다. 옛날 지네를 잡기 위해 항아리에 닭 뼈를 넣어두면 지네들이 냄새를 맡고 모여들었다. 지네의 밥이 닭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네 터에 닭이 있거나, 닭 터에 지네가 있어야 좋다. 서로를 경계해야하므로 기가 바짝 올라 발복이 제대로 되기 때문이다.

대문에서 집 밖을 보면 들 건너 정면으로 귀인봉이 보인다. 이 집의 안산으로 닭을 뜻하는 독계봉(獨鷄峰)이다. 마치 늠름한 수탉이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고 있는 모습처럼 생겼다. 닭과 지네가 가까이 있으면 위험하다. 천적인 둘 사이에 목숨을 건 싸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곳은 집과 독계봉 사이에 동진강이 흘러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서로 견제만 할 뿐 피해를 줄 수 없으므로 안전하다.

그런데 이 집 주인들은 지네의 먹이를 걱정했다. 그래서 대문 앞에는 약30여 평의 연못을 만들고 주변에 나무를 심었다. 나무들이 자라 숲을 이루자 나뭇잎이 연못에 떨어져 부엽층이 되었다. 그곳에는 많은 지렁이들이 서식한다. 지렁이는 지네의 먹이에 해당한다. 이 숲은 외부에서 마을과 집을 가려주는 역할도 했다. 외부의 찬바람뿐만 아니라 화적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이곳은 호남정맥 묵방산(538m)에서부터 비롯된다. 호남정맥은 전북 진안과 완주 경계에 있는 주화산에서 전남 광양 백운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다. 묵방산을 경계로 동쪽은 섬진강 수계인 임실군 운암면이고, 서쪽은 동진강 수계인 정읍시 산외면이다. 정상에 올라 보면 섬진강댐을 막아 생긴 옥정호가 아름답게 보이는 산이기도 하다.

묵방산에서 서북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맥이 국사봉을 세우고, 서쪽으로 상두산(574.2m)을 세웠다. 산의 생김새가 코끼리 머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두산에서 지금재를 지나 비봉산(332.4m)을 세웠다. 그리고 한 맥을 동쪽으로 뻗어 동진강가에 이르러 야트막한 창하산을 만들었다. 지도를 놓고 보면 묵방산에서 이곳까지 산맥이 원을 그리듯 한 바퀴 돌았다. 산이 돈다는 것은 그만큼 산세가 힘이 있다는 의미다.

인걸은 지령이라 했으니 산이 힘이 있으면 그 지역의 사람들도 힘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이 산자락에 있는 산외면과 태인읍에서는 옛날부터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특히 김개남은 지금실의 부잣집에서 태어난 열혈남아였다. 최근 SBS 인기드라마 녹두꽃에 등장하는 전봉준·손화중과 함께 동학농민군의 지도자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성인물이었으니 이곳 산세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산 정경연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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