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미국 농무부(USDA)에서는‘세계 곡물 수급 전망’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는데, 지난해 1월 20일 미연방 정부 일시 업무정지(Shut Down, 이하 셧다운) 사태가 발생하면서 USDA는 ‘세계 곡물 수급 전망’ 보고서를 발표하지 못했다. 이때, 세계 각국의 곡물 시장은 상당한 혼선을 빚었다. ‘해외곡물시장 동향’은 농업관계자 및 일반인이 곡물시장을 이해하고 정부가 농업정책을 수립하는데 가장 중요한 보고서로 곡물의 수급 변화를 파악하는 데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각국이 FTA를 체결함으로써 농산물 시장 개방이 가속화돼 세계 농업이 서로 밀접한 관계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어서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3.0%로 세계 평균인 102%에 턱없이 모자라며,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일본 27.2%, 중국 100%). 게다가 농림어업 GDP(국내총생산)와 경지면적, 농촌인구 등 주요 농업지표에서도 세계 평균보다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곡물의 자급률 수급 변화가 왜 중요할까? 우리나라는 쌀 이외 곡물 수급의 해외의존도가 매우 높다. 곡물 수급 변화를 파악하지 못해, 곡물이 부족하게 되면, 주식 뿐 아니라 사료로 사용되는 옥수수, 콩의 부족으로 축산부분에도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자연재해, 기후 변화로 인한 극심한 가뭄 등의 환경변화 시에는 식량 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의 식량 위기는 불을 보듯 경제는 물론 국가의 존폐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세계 농림어업 GDP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임에도 4.2%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농림어업 GDP은 세계 평균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0%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부문의 성장률이 비농업부문 성장 속도에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 농업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고령화로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세계평균(9%)보다 훨씬 높은 15%에 이르렀다. 고령화는 농업인구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쳐, 우리나라 총 인구 대비 농촌인구는 17.1%로 2002년(19.7%) 대비 1.6%p 감소하였다. OECD 회원국 평균 농촌인구 비중은 22.1%로,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중하위권인 23위를 기록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농업 전망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대략 1만 년 전 부터 우리는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열매를 재배하고 가축을 길러 식량 공급이 원활해지기 시작했으나, 지역별 편차로 인하여 식량이 부족한 곳은 삶의 다른 부분에 큰 발달 없이 어려움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가 기술혁신 속에서 쉽고 빠르며 편안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바로 곡물, 즉 식량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많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발전이 있었지만,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농업혁명이었다.

최근의 4차 산업 기술혁신은 거대하고 새로운 기회이다. 하지만 농업의 가치와 중요성이 간과된다면 이 새로운 물결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굶주려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이 기술뿐만 아니라 산업의 모든 부분을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무기화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볼 때, 기술발달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고, 농업의 중요성을 망각하여 곡물 수급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다면, 국가 전체의 위기 상태를 맞이할 것이다.

일찍이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농업의 가치와 중요성을 역설하고 실천했다. 그는 1996년 프랑스 농민연맹 50주년 기념식에서 “농민 없는 국가는 없다”고 말하고 농업이 프랑스를 지켜주는 기반임을 강조했다. 또한 2011년에는 파리국제농업박람회에서“ 농업은 생명이며, 창조이자, 독창성이며, 관대함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농림부 장관시절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 속에서도 프랑스의 농업을 지켜낸 지도자였다.

농업은 국가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의 근본이다. 디지털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시대에서 농업·농촌은 자연과 사람이 물리적,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다. 농업은 사람이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환경이 비슷하더라도 다양한 형태의 문화가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다양성과 함께 시대의 흐름과 기술의 발전을 존중하며 개방성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기존의 획일적인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종말과 함께 개인의 개성과 환경의 다양성이 중요한 시대를 맞이하면서, 농업을 미래 준비를 위한 핵심으로 두고 실천해야 할 해결책으로써 활용해야 할 것이다.

서재형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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