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청년은 초로의 중년이 돼서도 도전을 꿈꿨다. 인생을 배움, 채움, 나눔, 비움이라는 4단계로 나눠 한 단계, 한 단계 착실히 밟아 온 그는 ‘적절한 시기’가 닥쳤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2019년 7월, 새로운 도전에 나선 지 1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그는 “재능과 역량을 사회에 환원하는 나눔의 단계에 도달했다”면서 “나눔의 첫 페이지를 도전과 함께 썼다”고 회상했다.

“마이스터고등학교는 기업에 필요한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희망의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필요한 분야와 학교의 정체성을 잘 접목해서 마이스터고가 발전할 수 있는 체계를 공고히 만들고 싶습니다.”

지난해 2월 경기도 최초의 기업인 출신 교장 임용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의근(58) 수원하이텍고등학교 교장의 말이다. 그는 취임 당시 제시했던 ‘훌륭한 학교에서 위대한 학교로’라는 비전을 향해 오늘도 어제의 다짐을 되새기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삼성맨 30년…인사·인재개발 분야 전담= 수원하이텍고에는 이 교장과 똑 닮은 게 있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5감사 일기’다. 감사거리를 찾아 쓰다 보면 긍정의 힘이 커지고, 사람을 대하는 감수성이 높아진다는 게 이 교장의 설명이다. 긍정심리학에서 인성의 기본을 닦는 훈련방법으로 꼽힌다고.

“취임 전부터 생각했던 것인데 지난해 10월부터 도입했어요. ‘행복나눔 125’ 중의 하나인데요. 하루 한 가지 선행을 베풀고, 한 달에 두 권의 책을 읽고, 하루 다섯 가지의 감사 일기를 쓰는 것이죠.”

1987년 삼성에 입사한 그는 반도체계열을 선택했다. 반도체 산업이 막 뿌리내리면서 떠올랐던 ‘하이테크’라는 문구에 꽂혀서다. 당시 반도체계열은 기술과 인력이 부족해 ‘한직’으로 취급됐던 곳이다. 이 교장은 “면접관들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서 ‘왜 그럴까’라고 의아했는데 신입사원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돌이켰다.

그에게 주어진 첫 업무는 반도체 교육. 이 교장은 교육 체계와 시스템 등을 새롭게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이후 반도체산업이 본격적인 성장세를 타면서 그의 노력도 결실을 맺었다. 이 교장은 “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위험을 감행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인사·인재개발 업무를 전담하며 반도체산업 성장에 기여하는 인력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인재개발 부서장으로서 2008년에는 사내기술대학의 교학처장을 맡아 교육과정 커리큘럼 기획 등을 주도했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전문 기술자로서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꿈을 주는 제도라고 생각했어요. 당연히 보람도 따랐죠. 회사 임원을 교수로 임명하는 등 협업을 중시하며 교학상장(敎學相長)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2010년 임원 승진 뒤 삼성디스플레이에서 환경안전팀장, 단지기획팀장, 경영혁신팀장 등을 지냈다. 그는 2017년 11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경기도 내 마이스터고 중 하나인 수원하이텍고의 교장 공모에 지원한 것이다.

◇취업 선순환·인성·산학연계에 역점= 이 교장의 롤모델은 이승희 초대 부산자동차고 교장이다. 그는 “이승희 교장은 사원 시절 인사팀장으로 모셨던 분인데, 교육계에 투신 뒤 기술명인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서 “선배를 통해 마이스터고를 눈여겨보게 됐고, 적절한 시기에 수원하이텍고의 문을 두드렸다”고 전했다.

이 교장은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세 가지를 강조해 왔다. 대학진학 대신 취업을 중시하는 마이스터고의 시스템 상 취업의 질과 구조를 높여 취업의 선순환을 추진하고, 직업세계에서 필요한 인성부문을 강화하고 다듬는 데 주력했다. 또한 지역 기업과 학교 간의 연계 체계 구축에도 나섰다.

“기업인 출신 교장으로서 혼자 주도하면 학교 구성원과 괴리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학교에 대해 충분히 익히는 시간을 보냈죠. 또 선생님들과 협의를 통해 학교 발전방안을 정립하고 3개년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은 그가 마주한 또 다른 세상이다. 선생님들과 면담을 하거나 협의를 할 때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곱씹은 까닭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이 교장은 삼성 시절 반도체산업 현장에서 갈고닦은 실력과 경험을 학교에 접목, 교육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전념했다. 조직 정비와 업무 프로세스 심화, 소통과 협력 중심의 조직문화 구축이 그것이다. 그는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학교 발전 실행력을 제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원하이텍고의 비전 달성 3개년 계획은 ‘최고의 학교’를 모토로 한다. 이 교장이 내세운 3개년 계획은 미국 ‘포춘’ 잡지가 매년 선정하는 훌륭한 기업모델 GWP(Great Work Place)를 학교 운영에 접목한 ▶학생과 교사 경영진 간의 신뢰 ▶학교, 스승, 학업에 대한 자부심 ▶구성원 간 재미와 열정, 동료애를 통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혁신활동이 중심이다.

“구성원들과 함께 학생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자세로 학교를 경영합니다. 삼성 시절 경험이 큰 자양분이 됐어요. 취임 후 세 학기가 지났는데, 계획한 대로 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이 교장 취임 뒤 수원하이텍고는 졸업생 160명 중 152명(94%)의 취업을 이끌었다. 취업한 졸업생 중 85명(53%)이 대기업 및 공기업에 자리를 잡았다.


◇“취업인력 양성 ‘마이스터고’ 밀어줘야”= 마이스터고는 취업 인력 및 기술명인 양성이라는 취지를 안고 2010년 도입됐다. 이 교장은 “마이스터고는 지역 산업과 연계가 잘돼 있어야 학생이 취업하고자 하는 진로에 맞춰 기술과 사회화 교육이 용이하다”면서 “마이스터고 졸업생의 취업률이 높다는 것은 그 취지에 부응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수원하이텍고 학생들은 학업에만 전념하며 산업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기본기를 갖추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빠르게 변하고 발전하는 산업현장의 기술을 당장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은 아쉬움이다. 이 교장은 전문가의 조력을 통해 산업 일선의 기술 흐름을 받아들이면서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 산업이 영속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며, 이들을 양성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 마이스터고라는 게 이 교장의 신념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보편적 교육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일·학습병행을 충실히 수행하는 마이스터고를 통해 산업과 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도록 밀어줘야 합니다.”

이 교장은 지난 1년 반 동안 씨를 뿌리는 데 집중했다면, 남은 2년 반의 시간은 그 씨가 자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단계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그는 “시스템에 따라 학교가 자연스럽게 운영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완비하고, 동시에 기업의 필요 분야를 정해 학교와 연계 및 체계화한 뒤 학생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모든 과정을 정착시키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는 시니어 세대에게 “지키려는 관성에 익숙하더라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주도적인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20대 후반에 직업을 정하면 50대 중·후반에 현업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백세시대인데 50대에 새로운 인생을 설계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죠. 55세 이후부터 80세까지 새 인생을 산다고 봐야겠죠. 그 시기에 그동안 채워 온 것을 나눠야 하지 않을까요. 시니어들이 이를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중 하나의 사례인 것이죠.”

긴 인생에서 막 배움 단계를 벗어난 학생들에게는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다.

“사회는, 세상은 힘들고 위험이 따르는 곳이죠. 그렇더라도 피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그 신념을 젊은 인재들이 솔선수범한다면 미래는 더 발전할 겁니다.”

이한빛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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