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는 아프리카 적도 부근에 위치한 D.R. 콩고. 19세기 말 벨기에 식민지로 철저하게 착취를 당하다가, 1960년에 독립을 하고는 1996년의 1차 내전과 1998년의 2차 내전으로 국가 전체가 황폐화되었다. D.R, 콩고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애볼라, 에이즈, 내란 등의 순서로 나타난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 빠른 인터넷은 사치품이고 삶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 이곳에서 삶의 조건은 물이다. 전력이 없으면 불편하지만, 물이 부족하면 생명이 위협을 받는다. 그래서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들에서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물 접근성을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정부가 무기력하여 흙탕물을 걸러서 먹는 황색 물은 전염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을 넘어서는 대한민국의 광역시에서 붉은 수돗물로 기본권이 위협받는 사건이 있었다. 국토부와 환경부로 물 관리 권한이 구분되어 있어 문재인 정부 들어서 이를 통합했다고 홍보를 한지가 채 1년여 만에 이런 문제가 유발되어 더욱 혼란스럽다. 결국 물 관리 일원화는 중앙정부 차원이고, 국토부에 소속되어 있던 한국수자원공사를 환경부로 이관한 것이었다. 국가와 지방의 역할 분담은 여전히 이원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한국수자원공사가 도매 시장의 책임을 지고 지역에까지 공급하면,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소매 기능은 각 지방정부의 상수도사업본부라고 하는 공무원조직으로 구분되어 있다. 건설은 중앙정부의 재원으로 했지만 유지관리는 지방정부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에 경기도 31개 각 기초정부의 물 가격이 다르다. 지방의회의 조례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특별시와 광역시는 자치구의 구역이 협소하기 때문에 광역정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번 인천에서의 수돗물 사건은 지방자치의 관리 능력에 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전국적으로 상수도 관이 노후되어 누수율도 문제이고, 녹이 많이 끼었다고 예상하고 있다. 안정적인 유속으로 녹을 건드리지 않고 있어 크게 문제는 되지 않지만, 유속이 높아지거나 역류가 되면 녹물이 나올 수 있는 위험이 잠재하여 있다. 지방정부에서 이를 종합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작년에 일부 국비를 지원하기로 했지만, 네트워크로 구성된 상수도 사업의 전체를 조감하면서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무엇보다 관료 조직 내에서 소외되어 근무 의욕이 저하된 상수도사업본부의 공직자들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지도 우려된다. 그래서 ‘분권이 지방을 망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자치 능력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분권을 하면 그 권한과 책임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이다. 오랜 기간 왕정 체제에서 순종하면서 살아 왔던 독일 국민은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되어 자유를 찾았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패전, 군주제 폐지로 인한 기존 사회 질서의 변화에 따른 혼란, 인플레이션 등의 위기의식에서 독일 국민은 1933년 히틀러의 나치당을 선택했다. 고독, 불안 등의 사회적 심리가 나치를 향한 복종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를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1941년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라고 설명했다. 자칫 우리 사회에 ‘자치로부터의 도피 (Escape from Autonomy)‘가 확산될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이다.

이번 붉은 수돗물 사건은 자치와 분권의 과정에서 사전에 준비되어야 할 여건을 다시 고민하게 한다. 상수도, 하수도, 쓰레기 처리 등과 같이 주민 일상에 밀접한 기능을 기초정부에 이양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맞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재원과 인력 그리고 기술력이 담보되어 있는 지를 확인해야 한다.

오랜 식민지와 내전의 시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D.R. 콩고. 국가발전 전략 우선순위에 물 부족 문제를 설정하고 있다. 그것은 삶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백 불의 사회에서 전개되는 정책이 결코 우리와 동 떨어있지 않다. 정부는 환경 관리를 통한 삶의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하는 것에서부터 존립 근거를 찾아야 한다.

이원희 한경대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