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화성시 용주로 136

용주사 소장 ‘금동향로’는 고대 중국 청동기인 방정(方鼎)을 방제(倣製)한 것으로 2점이 용주사에 남아있다.

방형의 몸체에 구연(口緣) 위에 귀가 붙은 수직귀(立耳)와 납작한 편족(扁足)으로 구성돼 있다. 편족은 별도로 주조한 후 리벳(rivet, 금속 재료의 결합에 사용되는 막대 모양의 못)으로 몸체와 연결했으며, 다리의 상부는 도금을 했다. 몸체는 4개의 판, 비릉(扉慄·기물 위에 돌기된 형태로 나와 있는 선), 바닥판을 별도로 주조한 후 땜으로 접합하고, 수직귀는 리벳으로 고정했다. 뚜껑은 투조(透彫)된 연기 구멍을 별도로 주조한 후 땜으로 접합하고, 연기구멍 중앙의 손잡이는 리벳으로 연결했다. 뚜껑의 측면에는 덩굴문양을 새기고, 여백은 어자문(魚子文)으로 메웠다. 이 향로의 몸체에 새겨진 문양은 상단과 하단 모두 보조문양으로 뇌문(雷文)을 사용했고, 주문양인 도철문은 보조문양으로부터 돌출시키고 있다. 이처럼 보조문양으로부터 주문양을 돌출시키는 구조는 중국 상대후기(商代後期) 고동기(古銅器)의 문양표현 방법으로 ‘이층화(二層花)’라 부르고 있으며, 북송대 이후 청대까지 제작된 방고동기(倣古銅器)에서도 지속되는 표현방법이다.

향로의 바닥면 중앙에는 방형의 문양틀 안에 전서(篆書)로 ‘노공사문왕존이(魯公乍文王尊彛)’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북송 휘종(徽宗) 대에 편찬된 ‘선화박고도(宣和博古圖)’ 권2에 수록된 주문왕정(周文王鼎)이라는 명문과 같은 것으로 노공(魯公)은 주공(周公)을 의미하고, 문왕(文王)은 주나라의 문왕을 말하며, 존이(尊彛)는 제기(祭器)라는 의미다. ‘선화박고도’의 ‘주문왕정’을 방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정조가 쓴 ‘홍재전서’ 권4 ‘춘저록(春邸錄)’ 4記 ‘太湖石記(1774년)’에는 정조가 갑오년 봄에 태호석을 구해 창문 앞에 약관(藥罐)·향구·문왕정·선덕로를 배열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정조가 1774년(영조 50년) 이전부터 사용했던 것으로서, 팔각향로와 함께 용주사의 창건과 함게 하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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