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중국·러시아 공군합동훈련 중에 러시아 정찰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보면서 대한제국시절 영국군의 거문도 무단 점령이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당시 조선은 일본, 러시아, 청나라 같은 주변 강대국들의 식민지 각축장이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와 최종 패권싸움에 돌입했다. 그러자 러시아의 남진을 봉쇄하려는 영국이 일본과 짜고 거문도를 점령한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미국의 묵인아래 한반도를 차지하였다.

100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한반도에서는 그때와 유사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우선 미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북한까지 돌아가면서 ‘대한민국 때리기’ 하고 있는 것부터 똑같다. 중국이 사드 배치를 놓고 온갖 횡포를 부리더니, 북한이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우리를 겁주었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으로 뭔가 풀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일본이 작심하고 ‘한국 경제 말려죽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야말로 이쪽저쪽에서 얻어터지고 뜯겼던 이름만의 대한제국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더 똑같은 것은 때린 자들은 큰소리치고 있는데 얻어맞은 우리는 찍소리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우리를 우습게 여겨왔던 중국의 무례한 태도는 그렇다 치고, 폭력적 경제압박을 가하면서도 도리어 큰소리치고 있는 일본은 구한말 때 보였던 야비함 그대로다. 우리 영공을 침해하고도 한국 공군의 대응이 문제였다고 뻔뻔스럽게 우기는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더 웃기는 것은 핵폭탄으로 우리를 겁박하면서도 다 굶어죽게 생겼는데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 가냐고 큰소리치는 북한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경고메시지는커녕 사실조차 쉬쉬하기 일쑤다.

뿐만 아니다. 정작 당사자인 우리만 빼고 먼 나라에서 또 판문점에서 북미정상끼리 만나 협상하는 것도 어쩜 구한말 모습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자기들끼리 한반도를 어떻게 나누어 가질지 결국 누가 가져갈지를 결정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그 시절 그대로 판박이다. 심지어 일본의 경제압박을 WTO에 제소해 국제적 지지를 받겠다는 것도 솔직히 별 영양가 없던 헤이그 만국박람회에 특사를 파견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연일 주변국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제대로 항의조차 못하고 있으니 이게 나라냐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맞서 싸우기는 벅차니 참고 인내하면 우리의 진심을 주변국들이 이해해 줄 것이라는 정말 순진한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어차피 우리가 나서서 할 일이 별로 없으니 주변 이해당사국들끼리 협상하도록 중재자 역할이나 하겠다는 전략이 라면 이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무능한 패배주의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지난 몇 십년동안 우리를 낮춰 보기는 했지만 주변 강대국들이 대놓고 이런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최근에 와서 갑자기 이런 굴욕적인 상황들이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 대한민국은 군사력은 둘째치더라도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은 나라다. 그럼에도 1세기 전과 거의 흡사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강해졌다고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주변의 초강대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 군사력이 열세인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주변국가들이 우리의 군사력은 사용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각인되어 있다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런 인식은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많다. 물론 대한민국은 전쟁을 주도할 수도 없고 대한민국 군대는 평화를 지키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 해도 외부의 공격이나 도발행위에 대해서 강력한 대응의지를 보여주어야 만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다. 하지만 최근 우리 군은 너무나 무기력하고 지나치게 정치 논리에 포획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목함 귀순사건 같은 군의 기강해이는 도대체 나라를 지킬 의지가 있는 군대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지금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의병운동이나 죽창가를 부를게 아니라 강한 국토수호의지를 가진 군을 만드는 것이고 병사들의 힘찬 군가소리가 들리게 하는 것이다. 강한 군대를 가지지 않은 나라가 외교력이 강할 수 없고, 정치논리에 매몰된 군대는 절대 강한 군대가 될 수 없다. 100여 년 전 대한제국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외세에 끌려 다니다 나라를 통째로 빼앗겼다. 모든 것이 그때와 똑같아도 이것만은 절대 같아서는 안 될 것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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