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가 싱크탱크인 왕립국제문제연구소에서 가진 연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또 그는 무릇 정치 지도자가 설득하고 양보하는 자세를 갖춰야 하며 필요할 때 타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원칙과 실용주의를 결합시키지 못하고 필요할 때 타협하지 못하는 무능(無能)이 모든 정치적 논의를 잘못된 길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고백도 빼놓지 않았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에 두 번째 여성 총리인 메이는 차기 총리로 확정될 때만 해도 노동자들과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선언했다.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 부유한 런던과 나머지 지역의 간극격차를 줄이는 것에 무게를 두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보수당내 메이의 좌클릭은 마거릿 대처의ㅣ 그것과는 상반됐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이끄는 보수당이 절대적으로 노동자들 편에 설 것이라고 수 차례 힘주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총리 재임 기간은 한 마디로 브렉시트의 수렁에서 헤맨 한철이었다. 그리고 EU와 합의한 브렉시트 방안을 세 차례 표결에 부쳤음에도 보수당 내 강경파의 반대에 막혀 좌절되면서다. 결국 메이는 마지막으로 야당이 주장한 제2국민투표 실시 방안을 수용, 돌파구를 열어 봤지만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민주국가 체제에서라도 정치인 한 사람의 의지로만 국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예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가 현실화 되면서 사태는 고삐를 놓친 듯 보인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나 여권에서 내놓는 친일이나 반일의 프레임도 지금의 사안을 해결할 본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데까지 두 나라 정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양쪽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 과거사를 두고 정치외교적 분쟁을 경제와 연결한 일본의 조치가 온당치 못하고 우리 안에서 친일 논란으로 날을 지새우는 이분법의 진행도 도움이 되지 못해서다. 그럼에도 지루할 수 있는 이 치킨게임을 끝낼 묘안은 당장에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인지 두 나라 공히 서로를 쳐다보는 시선은 민망함을 넘어서 까칠해지고 말도 거칠 수밖에 없다.

메이는 떠나기 전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 아니다.“ ”정치에서 최적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양보하려는 자세와 설득이 필요하다.“ 고 정치의 가치를 말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와 일본은 메이가 말하는 토론과 양보로 공통점을 찾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극우든 극좌든 극단주의자들은 시궁창(gutter)에 있는 것이라는 메이의 생각 또한 두 나라의 지도자들에게는 그저 하는 말로 들리는 정도다. 사실 메이는 늘 정치인들의 언어에 대해 염려해 왔다. 갈수록 거칠어지고 편협해 지는 말투다. 나쁜 말이 불행한 행동으로 연결되고 증오와 편견 또한 그들이 하는 일을 점점 국민들의 생활을 어둡게 만드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국민들 어두운 얼굴에도 지지율 상승에 힘 받은 두 나라 정치인들은 연일 반일과 혐한 몰이에 정신이 없다. ‘서로에게 패를 놓치면 큰일이 날 선거가 기다려서 일 것’ 이라는 국민들의 의심이 혹여 맞아든다면 그 역공과 참담한 결과는 반드시 부메랑이 된다. 지금은 모르고 지나가도, 어쩌다 놓쳐 못 들을 수도 있지만 세상에 비밀이란 없는 법. 두 나라간의 대립이 장기전이 되면 될수록 거짓이나 얕은 수를 받치고 있는 동력은 약화될 것이고 자연히 국민들을 호도하던 치사할 수 있는 뒷얘기는 곧 드러날 수 밖에 없다. 타협에 임하기도 전에 상대의 손을 뿌리친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밝혀질 것이고 당시의 타협이 왜 제때 이뤄지지 않았는지 역시 역사는 기록할 수 밖에 없다.

메이 총리는 본인이 브렉시트에 실패해서가 아니라 타협에 대해 결코 ‘더러운 말(dirty word)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그것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거나 대중이 듣고 싶은 걸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정치가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면 서로 양보할 의지를 갖고 설득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를 돌아보자. 당장은 소모적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나라간 갈등, 특히 한일 간의 그것으로 이득을 얻기는 모두 힘들다. 싸우지 않고 이겨야 함에도 이미 코피 터지기 직전이다. 상대의 코에서 피가 흐르면 자신의 주먹도 상하게 마련이다. 좋은 타협이 중요한 이유다.

징비록(懲毖錄)은 유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전란사로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구절에서 따왔다. 하지만 이 책이 쓰였을 때는 이미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비옥한 강토를 피폐하게 만든 참혹했던 전화를 회고하던 시기였다. 다시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지난날 있었던 조정의 여러 실책들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징비록에서 유성룡은 전황 경과뿐 아니라 전란 발생의 원인과 조정의 대응에서 드러난 문제점도 기록했다. 모르긴 해도 이순간 신징비록은 쓰여지고 있을 것이다. 그 안에는 숱한 경고와 우려 속에 시작된 한.일의 경제전쟁 처음과 끝 까닭모를 속사정도 포함돼 있을 수 있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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