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대일 단기대책은 빈약해 보이고
중장기 대책은 어느 세월에 효과가 날지 의문이어서 걱정이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

일본이 수출 우대국가 목록인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빼기로 결정한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 4일 열린 당정청 회의 벽면엔 ‘다시는 지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정경분리와 자유무역 정신을 팽개치고 한국에 경제보복를 가한 일본의 치졸함에 분노하는 국민은 정권의 그 결의가 꼭 실현되길 원할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how)?’다. 우리가 바라는 극일(克日)의 세상이 분한 감정, 비분강개하는 마음에 맞춰 절로 펼쳐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집권 측은 과연 지지 않고 이기는 방책과 역량을 갖고 있을까? 4일의 당·정·청 협의회에선 몇 가지 ‘어떻게’가 나왔다. 향후 5년 간 100개 글로벌 기술기업 육성, 부품·소재기업 연구인력 확보, 산업 컨소시엄 구축, 부품·소재산업진흥을 위한 컨트롤 타워 설치, 내년부터 1조 원+α의 일본 경제보복 대응예산 편성 등이 그것이다. 당정청이 ‘매우 촘촘한 대책들’이라고 자랑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대책으로 국민과 기업인들에게 승리의 확신을 줄 수 있을까? 그것들은 꽤 오랜 세월이 흘러야 효과가 나는 것이고, 효과나 결과도 의도한 100%가 나온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가 뛸 때 일본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도 아닐 터, 집권세력은 “그동안 뭘 하다가 이제 와서 뒷북 처방이냐”는 비판을 들어도 싸다.

부품·소재산업 육성 등의 대책이 만시지탄이나 대일(對日) 의존도를 줄이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것이니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당정청의 그런 대책이 추진되기에 앞서 선행돼야 할 게 있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들을 혁파하고, 기업을 괴롭히는 민주노총의 못된 버릇을 고치고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며,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는 등 노동개혁을 먼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한 불화수소의 국산화·고급화의 길이 막힌 것은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야당 시절 법을 만들어 불화수소(불산)의 국내 생산에 ‘강력 규제’라는 족쇄를 채운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현실을 무시한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 문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기업 발전에 독(毒)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 아닌가. 정권이 만든 이런 나쁜 환경부터 제거한 다음 지원도 하고 육성도 하는 게 옳은 수순일 것이다.

일본의 보복조치는 우리 경제와 기업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보복이 지속되어 우리 기업과 산업이 피해 누적으로 허약해질 때엔 중장기 대책에 해당하는 당정청의 대책이 효능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문제를 속히 풀도록 하는 단기대책이 당장은 더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정부의 단기대책도 미덥지 못하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는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다. 안보 측면에서 우리도 손해를 볼 테고, 미국의 중재는 이끌어내지 못한 채 미국의 불신만 키울 수 있어서다. 일본을 우리 화이트 리스트에서 빼겠다고 하는 것도 묘수가 될 것 같진 않다. 일본이 받을 충격이 그다지 크지 않고, 일본과 똑같이 행동할 경우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일본은 감정적으로 치졸하게 나오지만 우리는 피해를 입으면서도 ‘지소미아’ 유지 등 의연한 자세로 대처하고 있음을 보여 줘야 한다. 그게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길이다. 정권 일각에서 ‘죽창가’ 운운하며 1965년 한일협정 파기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런 흥분과 비이성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국민은 정권의 위기극복 능력을 저울질하고 있음을 당정청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상일 전 국회의원·단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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