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언제부터인가 일진이 있어 왔다. 일진이란 힘없고 선량한 학생을 괴롭히는 학생을 의미한다. 분명히 일진은 못된 놈임에 틀림이 없다. 힘없는 학생은 약하다는 죄만으로 늘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한다. 억울함과 화를 참지 못해 일진의 그림자만이라도 짓밟거나 그도 모자라 죽창으로 콘크리트 땅바닥 위에 있는 일진의 그림자를 찔러댄다고 생각해보자. 결과는 어떨까? 일진에게 타격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 학생은 거칠고 날카로운 죽창에 자신의 손만이 만신창이가 될 수밖에 없다.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싸움이 될 뿐이다. 더욱 화나는 것은 저런 무모한 싸움을 하도록 부추기는 학생의 아버지다.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이 이런 바보같은 싸움을 시킨다면 더 이상 아버지라 할 수 없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왜 우리는 문명사회에서 백성이 죽창을 들고,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싸워야 하는가? 죽창을 들고 적과 싸우자고 하니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고 선동하기에 이만한 물건도 없다. 이런 선동을 통해 백성을 파멸의 수렁으로 빠지게 한 자가 있으며, 바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도 차베스가 있다.

징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본과 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협정을 깬 것은 우리다. 그리고 ‘징용이 불법인 것 아니냐!’라는 모순된 주장을 우리가 하고 있다. 이것이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이성적인 행동은 결코 아니다. 징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정을 맺어 놓고 징용 자체가 불법이다라고 주장하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와 협정을 맺을 나라가 있을까? 100년 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전범기업과 연관돼있는 모든 기업들에 대해서 불매운동을 하자고 선동하는 언론은 부끄럽지도 않은지 묻고 싶다. 불매운동을 해서 우리나라에서 한국인이 일본 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수많은 기업과 수만 명의 한국인을 다 굶겨 죽자는 것이 옳은 것인가?

반짝 불매운동이 아니라 근본적인 소비변화를 통해 글로벌화된 세계경제 질서 속에서 자력갱생의 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리를 폈던 이가 바로 차베스다, 나라 꼴이 어떻게 됐는가? 수많은 국민이 죽고 영유아도 수천 명씩 죽어 나가고 있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싸구려 애국심에 의존해 불매운동을 조장해서는 안된다. 물론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분들이 조직적으로 우리나라가 망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움직이는 것은 결코 아니라 믿는다. 대중은 근본적으로 감정적이다. 오로지 순수한 생각으로 ‘일본은 나쁜 놈들이다’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있을 뿐이다. 순수하다해서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상 모든 어리석은 행동과 끔찍한 악행은 가장 평범한 인간들이 자행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합의된 100년 전 일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때만 되면 끄집어내면서 왜 최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를 유린해도 제대로된 말 한마디 못하는가 하는 것이다. 화가 나는 것은 민간인만 52만 명 이상이 죽임을 당한 6·25남침 전쟁에 대해 사죄는 커녕 남침 자체를 인정도 안하는 북한에 대해 국방부장관이란 분이 ‘남침’이란 단어조차 입에 분명히 담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이해해야 할까? 홍길동도 아닐 진데 대통령이란 분은 탄도미사일을 탄도미사일이라 말하지도 못하고 단도미사일이라 말하는 것일까? 그토록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서만 유독 말 한마디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안 하는 것일까?

아마도 조만간 ‘임진왜란 피해보상 받아야 한다’는 머릿기사를 볼까 두렵다. 이순신장군은 작전으로 이겨놓고 해전에 나가셨다. 백성의 손에 죽창만 들려주고 앞세워 놓고 결코 병사 뒤에 숨는 일은 결코 없었다. 더 이상 이순신장군과 12척의 배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용재 공학박사, 경민대 교수

저작권자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