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사건인데 다른 사람은 보석으로 석방해 주고 우리 피고인은 기각 결정을 하다니, 너무 부당해서 못 견디겠다. 보석재청구를 해서 바로 잡겠다.”

오래전에 어느 선배 변호사가 여러 변호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흥분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형사피고인에 대하여 불구속재판 원칙보다는 구속수사가 대세였고, 구속영장을 발부할 때 영장실질심사 없이 기록만으로 서면심사한 후 구속이 결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건 적체로 인하여 기소 후 재판 기일이 지정될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 경미한 사건의 경우 재판 기일 전에 보석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도주 우려 없고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으며 피해자와 합의가 이루어진 피고인의 경우 보증금 납부 등을 조건으로 한 보석제도가 필요한 이유였다. 구속 피고인들은 구치소에서 피고인들끼리 정보를 교환하여 비슷한 죄명에다 피해결과가 유사한 경우에는 보석허가결정여부·형량 등을 비교하기 일쑤였다.

위 불평한 변호사는 유사사건 다른 사건은 보석을 받았는데 자신의 사건은 기각되었던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 단단히 화가 난 것이다. 급기야 그는 타인의 보석허가결정문을 첨부하여 보석 재청구를 하여 보석허가를 받게 되었다. 당시에는 전자화가 안 된 상태였기 때문에 판사 입장에서도 모든 사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피고인마다 범행수단·성행·범행동기·환경·사건 후의 정황·피해자와의 관계 등 제 정상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기계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었겠지만, 양형 편차가 너무 심할 경우에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입장에서는 불만이 싹트고 사법 불신의 원인이 되기도 한 것이다.

최근에 이르러, 법원에 전자화시대가 도래하여 법원정보 접근권이 대폭 개선되었다. 하지만 사법정보 접근권의 요체는 판결문 공개이다. 모든 판결문을 공개해서 국민으로 하여금 컴퓨터로 편리하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필자가 약10년 전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에 당선되어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을 겸직하면서, 대법원에 강하게 요구한 큰 이슈중의 하나가‘판결문 전면공개’였다. 판결문이 모두 공개되면 재판에 대한 공정성이 담보되고, 고질적 사법 병폐인 전관예우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 종국에는 사법신뢰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처리된 930만 3천589건의 본안사건 가운데 대법원 종합 법률정보(glaw.scourt.go.kr)에 공개된 건수는 2만4천855건으로 0.27%에 불과하다고 한다. 확정판결 중 비실명화 된 일부 판결만 볼 수 있는 셈이다.

한편, 대법원은 더 많은 판결정보공개를 위한 방편으로 서울 법원도서관 분실에 특별열람실을 설치하여, 법률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판결문을 열람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열람실에 있는 컴퓨터는 고작 4대에 불과하고, 열람가능 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열람하더라도 종이에 적을 수 있는 것은 법원명과 사건번호 뿐이다. 열람신청은 5분 만에 끝나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고, 하루에 20명 정도만 예약할 수 있다. 판결문의 복사나 사진 촬영은 불가능하고, 별도로 ‘판결문 제공 신청’을 해야 나중에 비실명 판결사본을 받아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법원은 개인정보공개·인력과 예산부족 문제 때문에 전면적 판결문 공개가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헌법 제109조에‘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누구나 모든 판결을 컴퓨터상에서 임의어로 검색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야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판결문 전면적 공개 현황은 한계가 있어 몹시 아쉽다. 특히 하급심판결 내지는 미확정판결 등은 판사들만 보고 있어 전관들은 개인적 친분을 이용해 이를 입수하여 보고 있는 것에 반하여 젊은 변호사들과 국민들은 그것을 취득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무기의 비대칭 논란이 있을 정도이다. 미국은 공공 기록물(public records)공개원칙에 따라 판결이후 24시간 이내에 미확정 판결문을 온라인 사이트에 기재한다. 영국·네덜란드는 미확정 판결문도 1주일 이내에 모두 공개한다. 우리나라 법원에서도 판결문 전부 공개가 이루어지게 된다면 글 서두에서 언급한 피고인이나 변호사가 겪은 경우와 같은 불만은 원천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보여 진다.

결국, 현재 법원이 제공하고 있는 판결문 공개제도는 그 범위와 편의성 측면에 있어서 아직도 국민의 사법정보 접근권을 충족시켜 주기에는 미흡한 실정이다. 바라건대, 완전한 판결문 전면 공개를 위한 제도 개선을 통하여 국민의 알권리·사법제도절차의 투명성·재판의 공정성·판결에 대한 책임성 강화를 실현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고 사법정의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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