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다양한 사건들이 경험과 기억이라는 기제(mechanism)를 통하여 우리 곁에 지속적으로 남겨진다. 경험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 것은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상관성의 속성 때문에 특별한 것이 된다. 물론 짧았지만, 그러나 행복했던 생일 파티는 한 점에 불과한 경험이 될지 모른다. 아무리 그 시간이 즐겁고 유익했다 할지라도 그것의 효과는 그렇게 오래 지속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런 기억들은 결국 심리적 영향력 정도로 남아 단지 몇 시간 또는 며칠 정도만 우리 곁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이 비관적이지 않을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기억 속에 살아남아 있는 그 장면들과 의미성(意味性)이 우리 영혼에 힘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경험하는 기억들은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경과(經過)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수많은 경험은 결국 과정의 한 점일 뿐일지 모르지만, 그것들은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시 의미를 만들어 낸다.

양자론(量子論)에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는지’를 기술한다. 이런 양자론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 원리는 결국 존재하는 사물들의 세계는 가능한 상호작용의 세계로 환원된다고 말한다. 물리학에서 이해하는 양자론으로 세상을 이해할 때, 가장 친근한 이해 방식은 시(詩)와 같은 문학적 표현으로 확장할 때 더욱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한 채 경험하는 세계 이해는 우리 가까이에서 매일 경험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달리는 전철 안에서 전철이 이동하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과 땅에서 우리가 두 발로 걸어가는 것은 결국 상대적 속도를 지각하는 것이다. 세상이 그것들에 주어진 방향과 속도를 그것들이 유지하고 있는데도 우리가 그것을 지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대성을 급진적으로 확장했을 때 대상의 모든 특성은 오로지 관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자연의 모든 사실은 관계 속에서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는 단지 어떤 대상이 있으므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관계성이 우주적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다른 대상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즉, 관계가 사물의 개념을 낳는다는 뜻이다. 양자역학의 세계가 대상들의 세계가 아닌, 기본적 사건들의 세계이며, 사물들은 이 기본적인 사건들의 발생 위에 구축되는 것이라는 말이 그래서 성립되는 것이다. 양자의 세계에서 자신의 모습을 잠깐 드러내는 이 현상을 ‘진동’이라고 표현한다. 세상은 그야말로 떨림(진동)과 울림(감동)이라는 관계 안에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름다운 알프스산맥이나, 장엄한 로키산맥의 봉우리들과 계곡들은 그것들을 경험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아 있게 된다. 행복했던 생일 파티처럼 말이다.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은 우리와 함께 평생 지속하며, 그것들이 우리의 의식을 찾아올 때마다 현재의 어려움과 반대되는 그 모습에서 우리는 해방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는 자연 속의 이런 경험을 ‘시간의 점(spot)’이라고 표현했다. 경험을 통한 상호작용이 우리에게 주는 재생의 힘인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으니….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때는 더 높이 올라갈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워즈워스는 자연 속에 이런 작지만 중요한 순간들이 있다는 믿음을 누구보다도 굳게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연을 관찰하고 감상하면서 보았던 모든 순간을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고 유익한 순간으로 남겨 놓고자 했다. 사물들과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성을 익숙함과 이기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기만 한다면, 우리는 나와 세계가 맺고 있는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 내부의 선(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 나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의미심장하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차종관 목사(세움교회/성결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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