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현덕사 신도의 모친 장례식장에 다녀 왔다. 요즘의 장례는 대부분이 장례식장에서 치른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어딜가나 한결같이 비슷하다.

망인이나 상주의 유명세에 따라  하얀 국화꽃으로 만들어진  조화의  숫자만 다를 뿐이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줄지어 서 있는 정도에 따라서 그 사람이 살아 온 발자취를 엿볼 수 있다.

문상을 갈때마다 느끼지만 화환이나 꽃바구니의 꽃들이 대부분 하얀색 국화꽃이거나 하얀색 일색의 꽃이다. 예쁜 장미꽃이나 화려한 빛깔의 꽃이면 훨씬  더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안그래도 슬픔으로 우울한 장례식을 더 침울하게 만든다. 돌아가신 분의 영정 사진 뒤로 온통 하얀색 국화로만 치장 돼 있었다.

앞에 놓인 조화 꽃바구니도 하얀 꽃 위주의 바구니다. 그런데 아주 화사하고 예쁜 꽃바구니가 하나 놓여졌다. 꽃바구니에 두른 띠줄에 '극랑왕생 하옵소서'라는 글귀가 없없다면 영락없이 생일이나 좋은 날에 주고 받는 축하 꽃바구니다. 내가 보낸 것이다.

상주인 보살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 꽃바구니 덕에 인사를 받았단다. 이렇게 예쁜 꽃바구니를 조화로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너무 이쁘고 곱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해왔다.

조화를 하얀 국화나 백합이 아닌 붉은 색 장미 꽃으로 만든 바구니를 처음으로 보낸 사연이다.

25여년 전의 이야기다. 멀리가 있을때 지인으로부터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노 보살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알려왔다. 당시에 수행중이라 갈 수 없었다. 돌아가신 보살님이 내게 잘해 주신것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뛰어갔어야 했지만...

그 보살님은 마음이 더없이 곱고 불심 또한 신실했다. 그래서 당시에 생각한 것이 예쁜 장미꽃 바구니를 보내 조문을 대신하기로 한것이다. 그때 이후로 내가 보내는 대부분의 조화는 예쁜 꽃바구니였다.

만약에 영혼이 있다면 단순이 노랗고 하얀 꽃보다는 화사하고 예쁜 꽃들을 더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영안실이나 빈소에는 하얀꽃으로만 장식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이것은 분명 우리 고유의 전통 장례문화가 아닐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 본 기억의 장례의식은 경건하면서도 축제같은 분위기였다.

특히 연세가 많은 할머니들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따뜻한 봄날에 꽃들이 만발하고 화사한 꽃길따라 꽃상여를 타고 훨훨 떠나고 싶다고 노래처럼 중얼거리는 말씀이다. 우리 고유의 장례 풍습은 요란스럽지 않지만 화려하고 축제같은 분위기였다.

다만 하얀 흰색으로만 상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죽은사람이 너무 어리거나 젊거나, 또는 부모보다 먼저간 경우다.

애상이라 해 단촐하고 아주 소박하게 장례를 지낸다. 조문객도 많지 않을 것이다. 부고를 알리지도 않고 나이가 어리거나 아랫사람이 죽은데는 나이든 사람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러니 조촐하게 지낼 수 밖에 없다.

연세가 많아 돌아가신 상가집은 호상이라 하며 말 그대로 잔치집 분위기 속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요즘에는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지만 옛날에는 대부분 집에서 장례를 했다.

떡을 하고 술도 빚고 돼지를 잡아 오는 문상객에게 융숭하게 대접을 했다. 마을사람을은 모든 일을 제쳐두고 상가집에 모여 각자 소임대로 일을 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꽃상여를 색색의 종이를 접고 오리고 붙여서 직접 만드는 것이다. 어렸을 당시에는 만드는 것을 구경만 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꽃상여를 수십개의 울긋불긋한 만장을 뒤 따르게 하고 춤추듯이 둥실둥실 마을 앞 논길을 가는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내 기억으로는 아주 화려하고 예뻤고, 아름다웠다.

그렇게 정성들여 꾸민 고운 꽃상여를 타고 가는 마지막 길은 망자도 분명 흐뭇하고 행복했으리라 믿는다.

상여꾼들의 소리도 듣기 좋았다. 지금이야 길이라도 넓고 좋지만 그때는 대부분의 눈둑길이 한두뼘 정도 였다. 그런 길도 곡예하듯 영차 영차 소리내며 무사히 지나가는 것은 완전히 예술의 경지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보면 냇가의 징검다리도 물에 빠지지 않고 건너는 것을 봤었다. 한동네에서 오래도록 같이 살아 손발이 척척 잘 맞아서 일 것이다. 요즘 시골에는 상여를 멜 젊은 사람이 없어 꽃상여가 진작에 없어졌다는데... 

애상이라 해서 젊은 나이에 부모보다 먼저 죽은 망자는 상여를 하얗게 한 백상여를 한다.

몇일전 절에 다니는 보살님이 와 "내일 모레가 절에서 해마다 지내는 먼저 간 딸의 제사인데 꽃다발을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보살님은 예쁜 꽃다발로 하고 싶은데 주위 사람들이 화려하고 색깔이 있는 예쁜 것은 안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물어 보러 왔다고 했다. 생전 딸이 어떤 꽃을 좋아했냐고 물었더니 빨간 장미꽃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면 당연히 예쁜 장미꽃으로 사오라고 했다. 사의 의미는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것을  올리는게 옳은 것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먼길 가시는 길 화사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예쁘게 곱게해서 보내드리자.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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