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교외 동아리 활동으로 신림동에 있던 아동보호시설을 2년 동안 다닌 적이 있다. 오팔육 운동권 서클이었으나 내 입장에서는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였다. 보호환경이 열악하여 친부모의 사랑아래 생활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성인 초년생이었지만 어른으로 뭔가 신뢰감을 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껏 어린 스무살짜리가 부모노릇 대신한다는 것이 비린내 나고 웃기기조차 한 일이기는 하나 그래도 그 당시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으니 돌려줄 때가 되었다는 선민의식 비슷한 것이 있었다. 어쨌든 아이들과의 신뢰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초등학교 오학년이었던 여학생의 학교까지 찾아가 담임선생님까지 만나 상담했던 일이 생생하다.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선의에 기인한 행위였다. 하지만 그 친구로부터의 반응은 예상외의 것이었는데, ‘무슨 권리로 담임선생님을 만났느냐’는 것이었다. 할 말이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어쭙잖은 선의였지만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숨기고 싶은 사실이 적나라하게 탄로 나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물론 그 친구와는 궁극적으로 좋은 관계가 만들어졌지만, 나로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도움을 준다는 것, 타인을 배려한다는 것, 사회를 위해 헌신한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진화심리학에서는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란 궁극적으로 보자면 집단이기주의에서 유래된 행위라고 정의한다. 즉 내집단에게는 이타적일 수 있어도 내집단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기적 선택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임상이나 상담심리학자들은 타인에게 그리고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저변에는 어쩌면 자신의 자존심을 끌어올리고자 하는 극도로 이기적인 욕구가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이런 저런 고민 끝에 나의 석사논문 주제는 ‘도움행동’이 되었고 관련 서적들의 탐독 후 깨닫게 된 생각은 선민의식이야말로 기만이고 이기심이란 느낌이 들었다. 타인을 나보다 얕잡아보는 생각, 그런 사고로부터 느껴지는 우월감 등, 특히 나는 그들과 다르니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연구수행을 위하여 범죄자들을 만났다. 그럴 때마다 과거 대학 초년생 때 가졌던 치기어린 선민의식을 떠올린다. 그들과 내가 무엇이 다른가? 그들이 과연 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들인가? 물론 답은 ‘no‘. 조금이라도 내게 남아 있는 우월감을 떨치려고 노력한다. 선입견과 편견 이중적인 태도 모두 사실은 나의 우월의식에서 유래되는 것이기에 철저히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우월적 태도를 유지하는 동안은 상대방도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 신뢰가 없다면 연구를 위한 면담은 실패이다. 따라서 연구를 위하여 허용된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나는 나를 깨려는 노력을 한다. 그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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